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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포럼] 나는 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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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11-16 22:07:36 수정 : 2016-11-16 22: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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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회 문건’ 보도 당시
청와대·검찰 수사 협의
최경락 경위 주범으로 몰아
죽음 내몬 배후 밝혀져야
1895년 1월 프랑스 장교 알프레드 드레퓌스는 강제퇴역당해 ‘악마의 섬’으로 유배됐다. 혐의는 독일 스파이. 그가 억울하다고 옹호하며 물증까지 내놓았던 다른 장교도 교도소로 갔다. 정부 고위직 인사들은 자기네 잘못을 은폐하기 위해 희생양이 필요했다. 진짜 범인은 무죄석방됐다. 소설가 에밀 졸라가 나섰다. 정부 조직이 결백한 사람을 죄인으로 몰아 범죄의 진상을 은폐했다고 폭로했다. 졸라에게는 중상 혐의가 씌워졌다. 121년 전 프랑스 정부 내에서 벌어진 일이다.

공권력에 의한 범죄 조작 의혹은 오늘날에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고위 권력자들이 자신들의 부조리를 감추고자 정교한 프레임을 짠다. 희생양이 된 하급직은 징역을 살거나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공복이라는 자부심은 한순간에 날아간다.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한용걸 논설위원
세계일보는 2014년 11월 이른바 ‘정윤회·십상시 국정농단’ 청와대 문건을 보도했다. 대통령이 “문건유출은 국기문란”이라고 하자 유출자 색출에 혈안이 됐다. 세계일보 압수수색을 시도하고 세계일보 관련 재단 세무조사에 착수해 재갈을 물리려 했다. 검찰은 세계일보 기자들을 수차례 소환조사했지만 유출 경로를 캐내는 데 번번이 실패했다. 사회부장이던 필자도 2014년 12월 31일 밤 7시에 검찰청사에 불려갔다.

당시 김영한 청와대 민정수석 비망록에 따르면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은 “(세계일보의 추가폭로를 막기 위해)기삿거리를 풍부히 제공하라”는 지시를 했다. 청와대발 문건유출 추정 기사가 넘쳐났다. 처음 나온 것이 ‘양천회’였다. 청와대에서 쫓겨난 조응천 공직기강비서관·박관천 경정이 문건을 흘렸다는 것. 문건 작성자인 이들이 강력 부인하자 ‘7인회 유출설’이 이어졌다. 세계일보 간부가 포함된 7명이 문건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거론된 인사들이 모두 펄쩍 뛰는데다 세계일보 간부의 진술을 토대로 한 반박기사가 나가자 서울지검 3차장은 “7인회는 수사대상이 아니다”고 선언했다. 이어 K·Y배후설이 나왔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유승민 의원이 문건파동의 배후라는 것이다. 두 사람의 강력 항의로 발설자인 음종환 청와대 행정관은 사표를 내야 했다.

유출경로의 출발점을 찾는 데 조급했던 청와대는 박모 경감을 시켜서 서울경찰청 정보분실 소속 한일 경위와 최경락 경위에게 접근했다. 박 경감은 한 경위에게 “녹취록이 있다면서요, 자진출두해 자백하세요. 그러면 불기소로 편의를 봐준다더라”고 회유했다. 박 경감은 직속상관이 우병우 민정비서관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고 덧붙였다. 청와대와 검찰이 짜고 희생양을 만들려는 시도였다. 박 경감은 “저도 살려주세요. 그냥 가면 불이익당할 수 있어요”라며 하소연했다고 한다. 한 경위는 “나만 살자고 받아들일 수 없다”며 거절했다. 그는 이튿날 새벽에 긴급 체포됐다. 검찰은 아무런 죄도 없는 그의 아내를 소환해 남편과 대질시키는 잔인한 짓도 저질렀다. 아내는 수갑 차고 포승줄에 묶인 남편을 본 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검찰은 압수수색 때 발견한 옥상 열쇠가 청와대 문건을 감춰놓은 저장소 열쇠로 보고 압박하는 어이없는 짓을 했다. 아내의 좌절을 본 한 경위는 최 경위에게 문건을 넘겼다는 허위 진술을 했다.

청와대 회유에 넘어가면 안 된다고 말렸던 최 경위는 검찰에 끌려갔다가 결백을 주장하는 유서를 남겨놓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아내와 딸들은 가장을 잃었고 가정이 파괴됐다. 덫에 걸려들어 동료의 극단적 선택을 봐야 했던 한 경위는 정신병원 신세를 지고 트라우마로 고생하고 있다. 불기소는커녕 5개월간 복역했다. 경찰에서 파면되었고, 전셋집에서 쫓겨났다. 그는 “우병우 수석한테 박살날까봐 두렵다. 당시에도 너무 무서웠다”며 몸서리쳤다.

나는 최 경위의 유서를 아직도 가방에 넣고 다닌다. “‘BH의 국정농단’은 저와 상관없고…저를 문건유출의 주범으로 몰고가 너무 힘들게 되었습니다. 저널리즘! 이것이 언론인들의 존재 이유입니다. 부디 잃어버린 저널리즘을 찾아주시기 바랍니다.” 누가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는지 밝혀져야 한다.

한용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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