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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애는 언제 낳아? 질문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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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11-20 21:51:04 수정 : 2016-11-20 21:5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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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소식 없어?” 올해 봄 결혼을 한 뒤 사람들이 내게 묻는 인사말이 하나 더 늘었다. 임신 소식을 묻는 이들이 생긴 것이다. 처음에는 웃어넘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질문의 빈도가 늘어났다. 아직 소식 없냐며 에둘러 표현하는 것은 양반이었다. ‘애는 언제 낳을 거냐’고 따지듯 묻거나 심지어 내 나이를 거론하면서 ‘빨리 낳아야 한다’고 훈계하는 사람도 있었다. 마치 내게 일을 맡겨 놓고 진행사항을 확인하는 것 같은 말투였다.

이 질문이 유쾌하지 않은 건 임신이 지극히 사적인 영역이기 때문이다. 내가 아이를 가질 생각인지 아닌지, 가지지 않는다면 그 이유가 뭔지, 가진다면 언제쯤 가질 생각인지 등을 ‘굳이’ 질문자와 나누고 싶지 않다는 것. 한마디로 그사람과는 내 인생계획을 공유하고 싶지 않다는 말이다. 그러나 안부인사로 남의 사생활을 묻는 사람은 예상보다 많았다.


김유나 사회부 기자
결혼을 하고 좋았던 점은 더 이상 ‘왜 결혼 안 하냐’고 묻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마치 게임에서 한 가지 미션을 클리어하자 다음 미션이 나타난 것처럼, 또 다른 질문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가 있는 친구 말로는 애가 한명 있는 사람한테는 “둘째 언제 낳아?”, 딸 혹은 아들만 있는 사람한테는 “아들(혹은 딸)은 안 낳을 거야?”란 질문이 끝없이 이어진다고 한다.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는 질문 수렁에 갇힌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런 질문이 불편한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올해 초 임신 초기에 유산을 한 친구는 아이 소식을 묻는 질문을 들을 때마다 우울하다고 털어놨다. 몇달째 아이를 가지려고 하지만 잘 되지 않는데 만나는 사람마다 별 생각없이 묻는 질문이 상처가 된다는 것이다.

출산 계획이 없는 또 다른 친구는 ‘꼭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폭력적이라고 하기도 했다. 이렇듯 상황이 어떻든 간에 ‘애는 언제 낳냐’는 질문을 듣고 기분 좋은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매우 높은 확률로 상대방을 불쾌하게 만드는 질문이 인사말로 쓰이고 있는 셈이다.

연예인 등이 군대 체험을 하는 예능프로 ‘진짜사나이’에 외국인 샘 오취리가 나온 적이 있다. 훈련 전 조교는 그에게 “여자친구가 있냐”고 물었다. 우리에게도 매우 익숙한, 훈련 전 으레 하는 질문이다. 그러나 샘 오취리는 “개인적인 질문”이라며 답변을 거부했다. 당시 그 대답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우리 사회에는 그의 말처럼 상대방이 알 필요 없는 ‘개인적인 질문’들을 아무렇지 않게 던지고 있는 문화가 만연한 것이 아닐까.

물론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상대방을 기분 나쁘게 할 의도가 없었다는 것은 안다. 그저 안부를 묻고 상대방이 걱정돼 던진 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상대방을 불쾌하게 만들면서 안부를 묻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러니 앞으로 안부를 묻고 싶다면 상대방의 연애나 결혼, 출산 유무가 아닌 다른 이야기로 시작해보면 어떨까? 안부를 물을 주제는 차고 넘친다. 결혼을 하지 않아서, 아이를 낳지 않아서 걱정이 되더라도 상대방의 인생에 대한 충고는 그가 의견을 구할 때만 제공하자. 상대방이 원치 않는 충고는 쓸데없는 ‘오지랖’에 불과하다. 

김유나 사회부 기자 yo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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