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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찬제의책읽기,세상읽기] 비밀을 사랑하는 권력은 위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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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11-22 01:06:24 수정 : 2016-11-22 01: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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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은 권력자 특권 아닌 고립의 족쇄 / 카네티 “권위주의일수록 침묵을 즐겨”
“비밀을 부모 형제나 아내나 친구에게 누설하지 않는 것이 왕의 특권이다.” 아랍의 ‘왕관의 서(書)’의 한 구절이다. 어디 아랍뿐이겠는가. 동서고금의 많은 권력자들이 비밀을 간직하는 특권을 누리지 않았겠는가.

가령 페르시아의 코스로스 2세는 비밀을 통치 수단으로 교활하게 이용한 왕으로 얘기된다. 기용하고자 하는 신하의 신중함과 충성도를 시험하기 위해 위험한 비밀을 알려주고, 그것을 지키면 중용하고 지키지 않으면 강등시켰다. 비밀로 신하들을 분할 통치한 그는 자신을 위해 가장 가까운 친구조차 배신할 수 있는 신하만을 거뒀다. 그러다 보니 그의 신하들은 수인(囚人)의 딜레마에 빠지기 일쑤였다.

1981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엘리아스 카네티가 저술한 ‘군중과 권력’은 유럽 사상계의 고전으로 격찬받은 바 있다. 이는 아널드 토인비가 “군중의 본질을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함으로써 인간사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의 토대를 마련한 책”이라고 말한 바 있다.

20세기 지식인들의 공통 과제인 ‘어떻게 예술과 철학을 사랑하는 독일인들이 포악한 권력자의 명령에 복종해 그런 끔찍한 만행을 저지를 수 있었을까’라는 질문에 답하고자 카네티가 35년에 걸쳐 치열하게 탐구했다는 ‘군중과 권력’을 필자가 다시 읽다가 비밀과 관련한 의미심장한 성찰의 지렛대에 오래 눈길이 머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터이다.

카네티에 따르면 비밀은 신체 안에 잘 위장된 ‘제2의 신체’이다. 그는 “비밀은 그것을 둘러싼 것보다도 밀도가 높은 것이며 주위와 단절된 채 거의 꿰뚫을 수 없는 어둠 속에 갇혀 있다. 비밀은 그 내용이 어떤 것이든 언제나 위험하다”고 한다. 그러기에 비밀에 접근하는 사람은 불쾌한 경이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유리 병정처럼 투명한 이들은 그런 제2의 신체를 지닐 여지가 적다. 반면 단단한 갑옷으로 무장한 권력자는 강고하고 밀도 높은 비밀의 신체를 내장하는 일이 많다.

카네티는 “권력의 가장 깊은 핵심에는 비밀이 있다”고 말한다. 권력자는 다른 사람들을 훤히 투시해보면서도 다른 이들이 자기를 꿰뚫어보는 것을 거부한다. 그의 내면 혹은 제2의 신체가 결코 다른 사람들에게 간파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서 종종 진실을 알고자 하는 군중들의 질문에 침묵한다. 극단적인 방어 형태다. 그는 “침묵에 부딪힌 질문은 방패나 갑옷에 맞고 튕기는 무기와 같다”고도 했다. 그럴수록 권력자는 위험에 빠질 수 있다. 침묵을 지키는 사람, 비밀이 많은 사람은 점차로 고립된다.

권위주의 체제에서 권력자의 침묵은 비밀을 집중시키고 그만큼 권력을 강화한다. 민주주의 체제라면 비밀은 여러 사람에게 분산되고 약화된다는 게 카네티의 견해다. 그는 “한 파벌이나 한 개인에게 국한된 비밀은 그 비밀을 가진 사람뿐 아니라 거기에 관계되는 모든 사람에게 결국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고 한다.

비밀의 폭발력과 그 안에 내장된 열기를 잘 알고 있었던 카네티의 성찰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시대인 지금 여기서 더 빛을 발하는 것 같다. 비밀을 사랑하는 권력은 위험하다. 비밀을 밝히려는 군중은 위대하다.

우찬제 서강대 교수·문학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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