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배우 경험, 필요한 증언 얻을 때 큰 도움 되지요”

관련이슈 차 한잔 나누며

입력 : 2016-11-25 21:06:45 수정 : 2016-11-25 22:59:09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차 한잔 나누며] ‘연기하는 변호사’ 홍승기 인하대 로스쿨 교수 “저는 영화에 출연이 아니라 출현을 해요.”

홍승기(57·사법연수원 20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보수적인 법조계에서 강한 개성의 소유자로 꼽힌다. 독특한 이력 때문이다. 국내 1세대 엔터테인먼트법 분야 전문 변호사로 알려진 그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40년 넘게 배우로도 활동하고 있다. 배역 자체는 대부분 작았지만 지금까지 이름을 올린 영화만도 10여편이다. 2012년 흥행 영화 ‘늑대소년’에서는 주인공 늑대소년(송중기 역)을 치료하는 한의사를 연기했다. 홍 교수는 “눈 깜빡할 사이에 화면에서 사라져 눈을 부릅뜨고 찾아야 된다”며 “단역배우의 애환”이라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법률가이자 배우인 홍승기 교수가 지난 14일 인천 남구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실에서 세계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남정탁 기자
최근 “B급 배우의 일상”과 “변호사로 산다는 것”의 소회 등을 담은 ‘어느 여행자의 독백’을 출간한 홍 교수는 지난 14일 만난 자리에서 이야기 보따리를 술술 풀어놨다.

그가 처음 연기에 발을 디딘 건 초등학교 6학년 때 대구 MBC의 전신 영남TV의 어린이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다. “제가 사투리가 좀 덜했거든요. 다른 친구들은 사투리 탓에 한 번만 출연하고 끝났는데 저는 매주 TV에 출연했어요.” 당시 프로그램 연출자는 이창동 영화감독의 친형이자 지역 연극계에서 저명한 이필동 감독이었다. 그 인연으로 그는 이필동 감독이 연출하는 연극 무대에 자주 올랐다. “돌이켜보면 그때가 제 연기인생의 전성기였던 것 같아요. 동성로에 나가면 대학생 누나들이 귀엽다고 콜라를 마구 사줬죠.”(웃음)

무대 위에서 맛보는 즐거움에 점차 빠져들었지만 어린 그가 보기에도 연극배우들의 생활고는 딱했다. “배우들의 지갑에 돈 대신 전당표만 수두룩하고 내일 쓸 연탄 걱정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좀 비겁하지만 생업을 따로 찾아야겠단 생각을 했어요.”

변호사가 되기 위해 고려대 법대에 진학했지만 사법시험에 합격할 때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법대 첫 수업을 듣는 순간 ‘뭔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법학이 저와 무척 안 맞더라고요. 하지만 그만두지는 못하고 정신적 고통이 심했죠. 사법시험에 여러 번 떨어져서 합격도 좀 늦었어요.”

어렵게 법률가의 길에 들어선 뒤에도 연기를 향한 갈증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사법연수원 수료를 앞둔 1991년 초 영화에 출연할 배우를 모집한다는 공모를 보고 가명으로 지원서를 넣었고 이후 지금까지 크고 작은 작품에 꾸준히 이름을 올렸다. 영화 ‘아주 특별한 변신’에서 배우 손창민, 이혜영과 함께 주연배우로 이름을 올렸다. 연극 ‘아트’에서는 배우 박휘순과 주인공을 맡았다. 영화 ‘연평해전’ ‘상의원’ ‘하류인생’ 등에도 단역으로 출연했다.

“연평해전 법률자문을 하면서 함대 사령관을 연기했어요. 영화 촬영지인 경남 진해까지 왕복으로 열두 시간 운전해서 갔죠. 머리도 군인처럼 확 치고 현장에서 열두 시간 대기하다가 대사 두 줄 하고 왔어요. 집에 갈 땐 항상 후회하죠. ‘다시는 오나 봐라’ 하면서. 그런데 얼마 못 가서 ‘누가 또 안 부르나’ 기다리게 되더라고요.” 그러고는 “아내도 예전에는 무척 반대했었는데 지금은 연기 레슨 좀 받으라고 뭐라고 해요. 하려면 좀 제대로 하라면서”라며 웃었다.

배우 경험은 변호사 일에도 도움이 된단다. “재판에서 반대신문을 할 때 상대방 측 증인을 뒤흔들어서 제게 필요한 증언을 뽑아낼 때가 있어요. 꼭 낚시를 할 때 고기가 딸려 올라오는 느낌이 들죠. 변호사가 법정에 서는 것도 일종의 연기라고 생각해요. 특히 배심원들을 상대로 변론하는 미국은 로스쿨생들이 연기학원을 다니기도 해요.”

자신이 좋아하는 문화예술 분야와 법률을 접목하는 길을 찾다 보니 자연스레 지식재산권법 분야 전문 변호사로 자리 잡았다. ‘독립제작자의 영상저작권 보호’ ‘저작권법 개정과 연극공연 상황’ ‘엔터테인먼트와 저작권’ 등 평소 관심 가진 주제로 논문과 전공서적을 펴내고 한국엔터테인먼트법학회장을 지내며 법조계 내에서 관련 논의를 이끌었다. 그는 동료 연극인들과 가난한 외주제작사에 도움이 되고자 한국연극협회 고문변호사를 맡아 10여년간 그들의 법률 조언자 역할을 했다. “영화 현장에서 계약서 양식도 만들어주고 내용증명도 많이 써줬죠. 변호사로서의 사건 수임에는 도움이 안 되지만 가난한 대학로 양반들이나 외주제작사 사람들과 10년 가까이 어울렸어요. 지금은 다 은퇴했죠. 현장을 떠나지 않으면 도산했어요. 씁쓸하고 안타깝죠.”

2013년 변호사 일에서 손을 떼고 후학 양성에 힘 쏟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남다른 교수다. 청바지에 부츠 차림의 파격적인 복장으로 강단에 서는 그의 저작권법 수업은 풍부한 현장 경험과 재미난 말솜씨로 학생들에게 인기다. “종종 다른 로스쿨 학생들로부터 ‘교수님 같은 엔터테인먼트법 전문가가 되고 싶다’는 이메일을 받으면 기분이 좋아요. 기회가 되면 전공서가 아닌 일반인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저작권 책도 한 권 쓰고 싶어요. 주연 욕심요? 당연히 하고 싶은데 불러주는 데가 없네요.”(웃음)

장혜진 기자 janghj@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아일릿 이로하 '매력적인 미소'
  • 아일릿 민주 '귀여운 토끼상'
  • 임수향 '시크한 매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