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나는 페미니스트가 싫다. 그래서 이슬람국가(IS)를 좋아한다”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시리아로 떠난 ‘김군’이 있었다. ‘그래서(So)’로 연결된 앞 문장과 뒷문장 사이에는 크레바스와도 같은 단애가 있었다. 증오가 증폭되면 공포와 공격을 낳는다. 여성혐오가 여성공포증을, 여성성공포증이 여성살해를 부르는 이유다. 이런 여성혐오, 여성비하, 여성폭력에 맞서 여성이 연대하기 시작한 것이다. 대중적이고 일상적으로, 감정적이고 도발적으로!
정끝별 이화여대 교수·시인 |
이들의 주체는 20대 여성들이다. 쌍팔년도 이후에 태어나 가정이나 학교에서 별다른 남녀차별 없이 자라며 페미니즘을 철 지난 구호처럼 여겼다. 헌데, 자신들의 의지나 능력과 무관하게 취업도 연애도 결혼도 막막한 삼포세대가 돼 있었고, 영문도 모른 채 여혐의 대상이 돼버린 동세대적 경험의 주체들이다. 여기에, 괜찮은 남자 만나서 결혼하는 게 현실적으로 남는 장사라고 생각했으나 취업이나 양육의 벽에 부딪혀 ‘경단녀(경력 단절녀)’가 된 30대 이후 여성들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자신의 일기장보다 편한 ‘수시로 욱하는’ 10대 여성들이 적극 동참하고 있다. 때로 ‘게녀(게시판에 댓글을 다는 여성)’라 불리는 이들은 SNS상의 연대를 기반으로 그 전선을 실생활에 펼치곤 한다. 직설적인 ‘현실 언어’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쓰고 읽으며, 지지하고 연대한다. 카톡, 밴드, 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에서 민첩하게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그 대응을 모색한다. 최근에는 SNS 해시태그(특정 주제에 대한 글임을 알리는 # 표시) 캠페인을 통해 해당 기관과 단체에 젠더폭력 근절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하고 나아가 전 세계의 여성과 연대하고 국제 여론을 형성하기도 한다.
며칠 전, 나 같은 SNS 문맹자에게도 문자 한 통이 왔다. 후배 여성시인이었다. “문단 내 성폭력에 반대하는 작가 서약을 받고 있습니다.” “하나. 나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둘. 나는 성폭력·위계 폭력의 가해자가 되지 않겠습니다. 셋. 크고 작은 폭력의 형태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겠습니다….” 온라인 서명을 하며 좀 참담해졌다. 이 기본적인 사항을 지켜야 한다며, 무슨 비밀결사대처럼 서약까지 하고 연대를 해야 하다니, 아직도!
정끝별 이화여대 교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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