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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찬의 軍] ‘수입병’ 걸린 한국군, 미국 방위산업체 배만 불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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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12-03 13:13:43 수정 : 2016-12-03 13: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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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을 위해 이륙하는 한국 공군의 KF-16 전투기
“당신이 서 있는 곳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라. 눈에 보이는 군용 항공기들은 대부분 우리 회사 제품들이다. 우리 회사가 한반도의 하늘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몇 년 전에 만났던 한 미국 방위산업체 고위 관계자는 기자에게 자신만만한 태도로 “우리는 한반도 하늘지킴이”라며 뼈 있는 농담을 던졌다. 오만한 발언으로도 들릴 수 있었지만 기자는 반박을 할 수 없었다. 그 말이 바로 오늘날 대한민국 군대의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군이 운영하고 있는 무기체계들을 소개하는 자료들을 살펴보면, 국내 방위산업체가 개발해 납품한 장비들을 제외한 무기들 중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미국’이다. ‘미국’이라는 단어 뒤에 명시되는 제조업체는 록히드마틴, 보잉, 노스롭 그루먼, 레이시온, 벨, 시코르스키 등 미국에서도 첫손 꼽는 방위산업체들의 이름이 줄을 잇는다. 지금 읽고 있는 자료가 한국군 소개 자료인지 미국 방위산업체 홍보 팜플랫인지 알 수 없을 정도다.

미국 무기에 편중된 우리 군의 무기 운영 시스템을 놓고 군 안팎에서는 무기 도입선을 유럽, 이스라엘 등으로 다변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수입하는 무기의 80%가 미국제라는 현실은 변하지 않고 있다.

“한국은 미국 방산업체의 큰손”

해상훈련을 위해 이동하는 세종대왕급 이지스구축함. 해군 제공
우리나라는 글로벌 무기시장에서 큰손으로 통한다. 북한의 위협에 대비한다는 이유로 냉전 시절처럼 막대한 양의 무기를 사들이기 때문이다. 장갑차를 1년에 10대씩 도입하는 등 소량 생산체제로 전환한 국가들이 대부분이라 우리나라가 글로벌 무기시장에서 뿌리는 달러는 방산업체들에게는 ‘가뭄의 단비’다.

글로벌 무기시장에 우리나라가 뿌리는 달러는 대부분 미국 업체들이 가져간다. 미 의회조사국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2014년 78억 달러(약 9조1500억원)의 무기 구매 계약을 체결해 세계 최대 무기 수입국이 됐다. 이 가운데 70억 달러(약 8조2000억원)어치의 무기는 미국제가 차지했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의 국제 무기거래 데이터베이스를 인용해 국방기술품질원이 발간한 ‘2016 세계 방산시장 연감’에서도2011~2015년 우리나라가 해외에서 수입한 무기의 80%는 미국제였다. 북한의 도발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서라지만 미국제 무기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미국 방산업체들 중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는 업체는 록히드마틴과 보잉이다. 두 업체는 우리나라의 대형 무기도입사업을 양분하며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특이한 부분은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시절 보잉이 대형무기 사업을 독식했지만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서는 록히드마틴이 두각을 나타내면서 보잉의 입지가 급속히 축소되고 있다는 점이다.

록히드마틴이 국내 무기시장에서 보잉을 완전히 제압한 것은 차기전투기(F-X) 사업이 결정적이었다. 7조3000억원을 투입해 40대의 전투기를 구매하는 대형 사업인 F-X에서 록히드마틴의 F-35A는 보잉의 F-15SE를 누르고 2020년대 한국 공군의 주력 전투기 자리를 차지했다. 2013년 여름 방위사업청은 경쟁입찰을 통해 F-15SE로 기종을 결정하고 방위사업추진위원회에 상정했지만 국방부는 부결시키고 수의계약을 통해 2014년 F-35A 도입을 결정했다.
 
한국 공군이 4대를 도입한 록히드마틴의 C-130J 수송기. 록히드마틴 제공
후속 사업 역시 록히드마틴이 수주하면서 국내에서의 입지는 더욱 단단해졌다. 2014년 11월 방위사업청은 2023년부터 도입할 해군 이지스구축함에 탑재되는 이지스 전투체계(3세트)를 1조2000억~1조4000억원을 투입해 록히드마틴에서 구입하기로 결정했다. 이지스 전투체계는 해상에서 적의 미사일이나 항공기, 함정, 잠수함 등 21개의 목표물을 탐지할 수 있고 레이더는 최대 1000㎞ 밖의 항공기를 추적할 수 있으며 탄도미사일의 궤적도 탐지할 수 있어 한국형미사일방어(KAMD) 체계의 핵심이다. 2013년 BAE시스템즈가 수주한 KF-16 성능개량사업 역시 비용 상승으로 계약이 취소되면서 록히드마틴이 사업을 맡았다. 이 사업에는 1조7500억원의 예산이 투입될 전망이다. 2010년 계약해 2014년 도입된 C-130J 수송기 4대와 2012년 착수된 F-16 PB 개량까지 합치면 록히드마틴의 성과는 더욱 두드러진다.

반면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 F-15K 60대와 E-737 조기경보통제기, 슬램이알(SLAM-ER) 장거리 공대지 미사일 등을 판매하며 기세를 올렸던 보잉은 2013년 아파치 가디언(AH-64E) 공격헬기 36대를 2조원대에 판매한 뒤 성과를 내지 못했다. 국내 무기시장에서의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던 공중급유기 사업마저 유럽 에어버스의 A330 MRTT에 패하면서 보잉의 입지는 더욱 줄어들었다.

한미 동맹이 미국 무기 의존도 높여…대안 마련 필요

미국 애리조나주 루크 공군기지에서 이륙하는 F-35A 전투기. 록히드마틴 제공
우리나라가 미국 무기 도입에 막대한 혈세를 쏟아붓는 것은 한미 연합 방어체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같은 다자 군사동맹체제가 없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는 미국의 군사정책에 지역 동맹국들이 보조를 맞추는 형태로 군사동맹체제가 구축된다. 따라서 이 지역의 동맹국들은 미군과의 연합작전을 고려해 자연스럽게 미국제 무기를 구매하게 된다. 호주의 경우 섬나라의 특성상 전차의 필요성이 낮지만 아프간 등 중동에서 미국과의 연합작전을 의식해 M-1A2 전차를 도입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한반도 유사시 우리 군은 미군과 함께 북한의 도발에 대응하는 작전을 펼쳐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양국 군의 상호운용성이 중요하다. 상호운용성을 높은 수준에서 보장하려면 주한미군과 동일한 무기를 사용하는 게 유리하다. 터키가 낮은 가격을 무기로 수출에 나선 T-129 헬기 대신 고가의 아파치 가디언 공격 헬기를 구매한 것도 주한미군의 아파치 공격헬기 대대를 의식한 포석이다. F-35A 40대 도입도 한미 공군의 공동작전을 고려한 결과다.

하지만 미국과의 군사동맹은 미국제 무기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는 결과를 초래한다. 미군과의 연합작전이나 공동훈련은 실전경험이 풍부한 미군의 노하우를 전수받는 장점이 있지만, 초고가인 미군의 장비를 예산 고려 없이 무조건 도입하려고 시도하는 문제점을 낳는다. 이는 미국 무기 의존도를 높이는 것은 물론 국방예산의 불필요한 증가로 ‘혈세 낭비’ 논란을 불러일으킨다. 말 그대로 뱁새가 황새 따라가려다 다리가 찢어지는 격이다. 

미군과의 상호운용성도 미국제 무기 의존도를 높이는 요인이다.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주한미국대사관 전문에 따르면, 2000년대 중반 우리 군이 조기경보통제기 4대 도입을 추진할 때 알렉산더 버시바우 당시 주한 미국대사는 군 고위관계자와의 면담에서 ‘미군과의 상호운용성’을 강조하며 E-737의 경쟁기종이었던 이스라엘제 G550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더 큰 문제는 우리가 미국 방위산업체의 큰손이면서도 자주국방에 필요한 기술이나 장비는 제대로 이전받지 못하는 ‘호갱’이라는 점이다. F-35A 도입 대가로 우리 정부는 한국형전투기(KF-X) 개발을 위해 필요한 핵심 기술 4건의 이전을 미국에 요청했으나 거부당했다. 다른 21개 기술에 대해서도 큰 틀에서의 이전 동의만 받았다. 록히드마틴으로부터 제공받기로 약속한 군사통신위성도 록히드마틴이 비용 분담을 요구하는 등 진통 끝에 1년여 만에 사업을 재개하기로 했지만, 사업 지연에 따른 책임은 묻지 않기로 해 특혜 논란이 불거졌다. 미국제 무기 운영을 위해 제조업체에 지불하는 후속군수지원 비용까지 합치면 ‘호갱’이라 불려도 할 말이 없을 지경이다.

가상 표적을 향해 발사되는 공군 패트리어트 지대공미사일. 공군 제공
때문에 군 안팎에서는 공중급유기 사업에서 미국 보잉의 KC-46A 대신 유럽 에어버스의 A330 MRTT를 선정한 것이나 장거리 공대지미사일 사업에서 유럽제 타우러스(TAURUS)를 도입하기로 한 것처럼 무기 도입선을 다변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최첨단 무기 도입으로 한국군을 무기전시장으로 만드는 대신 북한의 위협에 대응할 수 있는 수준의 무기 도입을 추진할 경우 유럽이나 이스라엘제 무기도 충분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호주가 잠수함 사업에서 독일, 프랑스, 일본을 경쟁시켜 50억 호주달러(약 4조2000억원)를 절감한 것처럼 미국과 유럽, 이스라엘 업체가 국내에서 경쟁하면 무기 가격을 낮출 수 있다. 

이와 함께 국내 방산업체의 기술 수준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내 방위산업은 세계 각국에 무기를 수출하는 수준에 이르렀으나 핵심 기술은 여전히 미국 등 선진국에 의존하고 있다. 원천 기술을 확보하면 우리 군이 요구하는 무기를 신속히 개발할 수 있고, 시장 경쟁자 등장을 막기 위해 미국 방산업체가 자사 무기의 가격을 낮추는 효과도 있다는 것이다. 미국 무기라고 해서 조건이 좋지 않고 값이 비싼데도 무조건 도입하는 것은 비정상이다. 할 말은 하고, 경쟁할 것은 경쟁하면서 국익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 G20 회원국이라는 위상에 걸맞게 미국 방위산업체의 ‘호갱’ 노릇도 이젠 그만둬야 할 시점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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