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에서
말 못할 것들이 흩날렸다
내리는 눈은
친구가 아니라서
바닥에 쌓이거나
행인의 발길에 밟힐 것이다
(…… )
호랑이 한 마리 나타나 울부짖으면
내린 눈들이 화들짝 놀라
하늘 속으로 눈 내리러
다시 올라갈 것만 같았다
친구는, 내려오는 친구는
저렇게 하얗고 속절없이 많아도
다 내가 더럽혀야 할 눈이었다
내리지 않는 눈이
가장 순수한, 착한 눈이었다
친구는
죽은 친구가, 아직 만나지 않은 친구가
제일 좋은 친구다
이미 치워진 눈과
치워진 눈 위에 밤을 새워 내리는 눈과
이미 눈 녹은 물로 내 신발을 적시는 눈과
눈을 뭉치며 달아나는 친구의 뒤통수에 정확히 박히는 눈과
말없이 뒤란 그늘 속으로 숨어드는 눈과 함께
친구는, 죽은 친구가 제일 착한 친구였다
김영남 시인 |
인용시는 지은이 유종인의 시적 교우론이다. 시에 의하면 가장 좋은 친구란 아직 만나지 않는 사람이고, 가장 착한 친구는 이미 곁에서 떠난 죽은 친구란 것이다. 이유인즉 내린 눈을 내가 밟아 더럽히는 것처럼 친구도 만나는 순간부터 순수성을 더럽히기 때문이라고 비유한다. 눈에 대한 우정의 비유가 눈부시다.
김영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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