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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리포트] 미국 여당과 한국 여당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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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12-05 01:25:52 수정 : 2016-12-05 01:2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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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후보 약자 차별 발언하자 / 미 공화당 지도부, 즉각 비판 나서 / 새누리당, 제 역할 못하고 맹종만 / 국민, 정의감 넘치는 정치인 원해 “안녕하세요. 어디로 모실까요. 백악관 근처로 가시네요.” 우연이었다. 며칠 전 우버택시를 이용하면서 만난 기사들이 두 차례 연속 재미동포였다. 한국말로 대화를 한 기쁨은 잠시였다. 대화 주제는 고국의 상황으로 옮겨갔고, 우울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먼저 만난 기사는 1997년 외환위기 직전에 미국으로 이주했다고 했다. 20년 동안 접한 한국 뉴스 중 가장 울화통을 터뜨린 게 국정농단 소식이었다고 고백했다. 어쩌다 한국인을 만났던 나와 달리, 그는 일주일에도 여러 차례 한국인 승객을 태운다고 했다. 한국인 승객은 죄다 촛불 민심에 제대로 반응하지 않은 채 밀실에 숨어있는 청와대의 자세를 비판한다고 했다. 한국인에게 택시가 민심의 통로인 것은 서울이나 워싱턴이나 마찬가지인가 보다. 또 다른 기사는 한국에 돌아가기 위해 애써 시민권을 취득하지 않았다는 초로의 재미동포였다. 그러면서 한국에 있는 분들께 미안하다고 했다. 분노의 마음을 청와대에 전하지 못하는 상황엔 못내 억울해했다.

이튿날 뉴욕행 기차를 탔더니, 백인 노신사가 말을 걸어왔다. 보통 백인은 굳이 말을 걸지 않는데, 그는 달변가였다. 한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를 비꼬았는데, 요약하면 이랬다. 트럼프는 원래 대통령에 뜻을 두지 않고, 단지 유명해지고 싶었다. 트럼프라는 브랜드만 널리 알리려고 했는데, 당선이 돼 본인도 놀랐다고 본다. 대통령이 됐으니 이제 편하게 말도 못하고, 여성에게 쉽게 접근도 못할 것이다. 노신사의 풍자에 웃음이 나왔다.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그가 나의 국적을 물어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한국인이라는 것을 확인한 그가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노신사는 “국민을 위한다면 한국 대통령은 사임해야 한다”고 했다. 외국 언론의 사설을 인용한 듯한 말을 면전의 백인에게 직접 들으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조금이라도 존엄성을 지키고 싶다면 (국정농단의) 서커스를 지금 끝내야 한다”고 청와대를 겨냥했던 말까지 떠오르자 참담함이 더해졌다. 노신사가 그나마 위로의 취지로 건넨 말에 희망을 찾았다. ‘역사는 장기적으로는 진보하고, 국민과 진리가 이긴다’는 이야기였다. 노신사가 사족까지 덧붙였다. 미국에서는 (대통령을 배출한) 공화당이 역할을 해줘야 하고, 한국에서는 여당이 제 역할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박종현 워싱턴특파원
미국 공화당은 트럼프 당선자가 후보 시절 약자에 대한 차별적인 발언을 내놓자 적극적으로 비판 대열에 합류했다. 폴 라이언 하원의장 등은 트럼프의 주장이 에이브러햄 링컨과 로널드 레이건을 배출한 정당의 대선후보로서 맞지 않는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공화당은 어느 개인을 위한 정당이 아니라고도 했다. 대선을 내주더라도 보수정당의 가치를 지키자는 주장이었다. 트럼프가 당선된 이후에는 그런 공화당의 입장이 시류를 읽지 못한 단견이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지만 그런 비판이야말로 전형적인 포퓰리스트의 시각이다. 트럼프가 대선에서 승리했다고 해서 그의 주장이 진실이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차원에서 보수 가치를 훼손하는 트럼프의 행보에 제동을 걸고 있는 공화당의 자세는 평가할 만하다.

한국의 새누리당은 어떤가. 지인들의 페이스북을 살펴보았다. 6주째 이어지는 주말 촛불집회에 나선 200만명의 일원이었던 지인은 “당분간 결혼식에도, 송년회에도 못 간다. 주말엔 나랏일(촛불집회 참여)을 해야 해서”라며 위트 속에 묵직한 속내를 표출했다. 정치적 수 싸움에만 적극적인 청와대와 정치권을 향한 돌직구는 차고도 넘친다. 잔머리를 굴리는 여우보다는 한칼을 가진 고슴도치의 자세를 요구하는 민심의 강도는 그만큼 단단하다.

독재정권 시절 민주공화당을 뿌리로 한 새누리당은 지금 우리 국민에게 어떤 존재일까. 정의보다는 권력자에게 추종하고 맹종하기에 바빴던 새누리당 의원들에게 미국의 사상가 헨리 소로가 했던 말을 들려준다. “법이 아닌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길러야 한다. 나는 단 한 차례도 불의한 정부를 나의 정부로 인정한 적이 없다.” 국민은 영웅 같은 대통령, 훌륭한 정치인은 원하지도 않는다. 일반 국민 수준의 상식과 예의염치를 아는 이들이면 족하다.

박종현 워싱턴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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