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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진의청심청담] 마녀사냥과 디아스포라의 한국적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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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12-06 00:37:23 수정 : 2016-12-06 00:3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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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시위 성숙한 시민의식
급진 좌파와의 불상사 막은 건
한국 민주주의 새로운 희망
당파 떠나 나라 먼저 생각할 때
요즘 한국사회에서 가장 빈번하게 신문과 방송과 잡지에서 등장하는 ‘마녀(魔女)사냥’과 ‘디아스포라’(diaspora)라는 단어가 있다. 왜 이 단어들이 극성을 부리는 것일까. 이 단어들이 많이 등장하는 사회는 우선 불안정한 사회이고, 상대를 적으로 몰아야만 살아남는 불합리한 사회이다. 또 낯선 이국에서 유배생활의 미래를 연상케 하는 단어이다. 둘 다 유대기독교문화의 몸통에서 나온 불길한 단어들이다.

알다시피 마녀사냥은 15세기 전후,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변혁기에 잘난 여성에 대한 콤플렉스와 권력욕에 사로잡힌 남성들이 부린 집단히스테리 사건이다. 마녀사냥은 당시의 지식인이나 신부, 법관에 의해 자행되었다는 게 놀랍다. 마녀사냥의 주된 대상은 돈 많은 과부나 매력적인 여성들이었다. 남성이 콤플렉스나 위험을 느끼게 하는 ‘잘난 여성’이었다.


박정진 문화평론가
마녀사냥은 기독교신앙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여성이 악마와 내통했다는 ‘이브의 원죄’의 창세기 말씀과 여성의 육체에 대한 본능적 두려움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생긴 집단광기로서 기존의 교회권력과 사법권력이 결탁해서 만들어낸 잘못된 위기탈출 의식이었다. 마녀사냥은 백년전쟁이 끝난 다음 본격화되기 시작했는데, 백년전쟁에서 프랑스를 구한 영웅 잔 다르크도 마녀재판을 받고 처형당했다.

마녀사냥으로 15∼17세기에 20만 ∼50만명의 여성들이 사형대에서 스러졌다. 기독교가 저지른 끔찍한 여성 집단살해였다. 마녀들은 별로 사악하지도 않았다. 마녀들은 실지로 공동체에 해를 끼친 것도 아니고 그저 예부터 내려오던 여성의 역할로서 공동체 내에서 출산을 돕거나 질병을 치료하는 민간치료사들로서 무의(巫醫) 혹은 주술사(witchcraft)였다.

마녀사냥의 물결은 15세기 이교도의 침입과 종교개혁으로 분열되었던 상황에서 벌어진 사건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과 변혁의 시기에 합리적인 해결을 하지 못할 때 우선 적을 만들고 희생양을 통해 대리 해소함으로써 민중의 심리적 안정감을 얻었던, 기독교가 자행한 가장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마녀사냥이다.

마녀, 마귀는 본래 인류가 모계사회에서 부계사회로 전환하면서 여성창조신인 ‘마고(mago)여신’을 마녀(魔女)로 몰면서 비롯되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마귀(magu, magi)는 ‘마고’의 전음(轉音)이다. 가부장사회를 이룩하기 위한 남성들의 노력은 지구적으로 전개되었는데 여성을 ‘원죄의 주인공(기독교)’으로 만든 것을 비롯하여 ‘여신의 폐위(廢位)’ 사건 등이 일어났다.

요즘 한국사회에 갑자기 무당 논쟁이 벌어지는 것을 보면 ‘마녀사냥’의 중세로 돌아간 느낌도 없지 않다. 합리적으로 미래를 개척하지 못한 남성권력의 집단불안의 반영인지도 모른다. 박근혜정부를 물러나게 하는 가장 합법적이고 정당한 방법은 국회의 ‘탄핵’이다. 박 대통령도 공모 혐의에 대해 부당하다고 생각한다면 특검과 탄핵을 받아들이고, 헌법재판소의 최종결정에 당당하게 나서야 크고 작은 혐의에서 풀려날 수 있을 것이다. 촛불 시비로 ‘하야’하는 것보다는 시시비비를 가려야 잘못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합리적인 민주주의의 발전에 공헌하게 될 것이다.

‘디아스포라’는 지금의 한국처럼 유대민족이 남북으로 갈라진 북쪽의 유다와 남쪽의 이스라엘이 차례로 망하면서 팔레스타인 본토를 떠나 세계 각지로 흩어져 살게 된 것을 의미한다. 지금은 본토를 떠나 해외에 흩어져 사는 ‘민족 집단’을 일반적으로 지칭하기도 한다.

디아스포라의 유대인들은 해외 현지에 잘 적응했으며, 성공적이었다. 유대인들은 조국을 잃은 상태에서도 항상 유대인 집단촌을 건설하거나 현지인들과는 다른 정체성을 유지했다. 유대인의 민족적 배타성은 현지에서 반(反)유대인적 풍조를 발생시키기도 했지만 그러한 정체성을 유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구약인 토라였다.

한국인도 일제식민 시절 디아스포라의 경험이 있다. 지금 해외에 산재한 500만명의 교포들도 대부분 디아스포라의 산물이다. 최근 디아스포라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하는 것은 아마도 남한에 좌익과 종북세력이 확장됨에 따라 불안의식이 전염된 것으로 보인다. 남한의 경제는 지금 북한의 20배 이상에 달하지만, 이데올로기 전쟁에서는 남한이 참패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촛불시위가 수많은 인파의 참여에도 불구하고 평화적으로 진행됨으로써 급진좌파와의 물리적 충돌과 불상사를 막은 것은 한국 민주주의의 희망을 갖게 한다. 여야를 막론하고 대선 정국의 주도권과 당파이익을 떠나 대승적으로 나라를 생각할 때이다.

대한민국에서 디아스포라가 실지로 발생할 확률은 낮지만, 핵무기 개발 등 북한의 계속되는 도발을 보면 위기감이 해소될 수 없는 입장이다. 어떻게 일군 산업화인가! 앞으로 제4차 산업화에서도 적극적으로 나서 고지를 선점해야 한다. 유대인에게는 구약이 있지만 한국인은 그것도 없으니 작은 땅덩어리라도 잘 지켜야 한다. 여기에 신의 뜻이 있을지도 모른다.

박정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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