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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철칼럼] 충동과 반동 경계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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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12-07 01:06:36 수정 : 2016-12-07 01:0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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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치는 간웅들 또 다른 ‘박순실’ 예고 / 촛불 열정, 선동에 휘둘려선 안 돼 ‘박근혜 탄핵열차’가 질주하고 있다. 야 3당과 새누리당 비박계가 ‘연대’한 것은 탄핵안 가결의 기정사실화를 말해준다. 대세는 결정됐다. 박 대통령이 어제 국회의 탄핵 표결과 헌재의 심판 절차를 받아들인다는 입장을 간접 피력했다. 결정적 변수가 발생하지 않는 한 9일 ‘박순실’ 대통령의 탄핵안은 가결될 것이다. 그 순간부터 박 대통령은 직무정지를 당해 청와대 관저에 유폐될 수밖에 없다.

12년 전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과 비교하기엔 박 대통령의 죄상이 너무 무겁다. 노 전 대통령은 선거법 위반의 단순 혐의를 받았지만 박 대통령은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 주는 청와대 비서들을 최순실의 배를 채우는 데 동원하고, 선출되거나 임명되지 않은 최순실 일파에게 국정운영권을 주었다. 정부의 장차관·국장을 최순실을 위해 승진시키고 강등시켰다. 국민의 노후자금인 국민연금을 주머니의 돌처럼 갖고 놀다 재벌에 갖다 바쳤다. 그도 모자라 국세청과 검찰을 동원해 언론을 탄압하고 최순실 치부를 위해 재벌의 손목을 비틀고 국가안보의 중심인 청와대를 요상한 미용센터로 만들어버렸다. 사상누각이나 소설이 아니다. 검찰의 공소장과 국정조사에서 드러난 내용이다.

백영철 편집인
이런 행위는 신라시대 왕정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민주주의를 유린하고 헌법을 내동댕이 친 것이다.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이 정신줄을 놓지 않는다면 박 대통령의 탄핵안은 의당 인용될 것이다. 그러면 이르면 1월 말, 늦어도 꽃피는 춘삼월엔 대통령의 하야가 법적으로 결정된다. 이 모든 것은 민심의 힘이다. 촛불의 열기가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고 있다.

소설가 이문열은 광화문의 촛불시위를 북한의 질서정연한 ‘아리랑 축전’에 빗대 “으스스한 느낌이 든다”고 했다. 이문열이 광화문의 촛불시위를 한 번이라도 보고 이런 말을 하는지 의문이다. 촛불시위가 벌어지면 광화문 주변 도로 골목길, 음식점, 심지어 화장실마저 사람은 넘쳐난다. 동원된 사람도 있겠지만 가족단위와 친구들, 연인들이 태반이다. 지난 주말 6차 촛불집회도 그랬다. 우리가 오후 6시쯤 서울역을 출발해서 시청을 거쳐 광화문으로 들어갈 때 자동차 도로엔 수많은 사람이 연좌시위하고 있었고 밀려서 행사장으로 들어가는 사람들과 어깨를 부딪치며 빠져나오는 사람들로 뒤섞여 있었다.

호루라기 부는 사람이 없어도 질서는 흐뜨러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170만명이 참가했다고 발표한 주최 측이 32만명이라고 발표한 경찰 측보다 더 설득력 있어 보였다. 조직적이고 결사적인 시위대가 있기도 했다. 반면 축제라고 여겨 나들이 겸해서 나온 사람도 많았다. 자발성이 높은 시위였다. 이 점에서 이문열의 진단은 보수파의 시행착오이고 무지의 소산이다.

숨은 여론도, 침묵하는 다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행동하는 여론이 세상을 움직인다. 30년 전 넥타이부대가 군사정권의 대통령 간선제 독재를 무너뜨리고 직선제를 쟁취한 것처럼 2016년 촛불의 열기는 대한민국의 새로운 역사를 쓰게 하는 원동력이다. 민심의 욕구를 수렴해야 하는 곳은 정치권이다. 새 시스템을 만들고 정착시키는 데 주력해야 한다. 촛불 민심을 제대로 살리는 길은 우리의 민주주의를 한 단계 성숙시키고 정치사회 전반을 개혁하는 일이다. 실상은 딴판이다. 촛불 민심에 편승하거나 이용하려는 정치인들이 한둘이 아니다. ‘박순실정부’를 타도하면서 자신이 ‘박순실’로 탈바꿈하는 꼴이다.

조기 대선은 불가피하다. 박 대통령이 하야하면 60일 내 대선을 치른다. 차기 대선은 정의와 불의의 싸움이 될 것이다. 정의롭지 못하고 도덕적이지 못한 정치인들은 도태돼야 한다. 대선전은 꿈과 비전, 가치의 경쟁장이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대선주자들은 하나같이 막말이나 간교한 말로 민심에 아부하는 데 혈안이 돼 있다. 순한 백성들을 내세워 권력을 잡고자 하는 간웅이 따로 없다.

유력 대선주자들은 앵무새처럼 말한다. 탄핵안이 가결되면 헌재의 심판절차를 기다리지 말고 즉시 대통령이 하야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심의 외침이긴 하다. 그렇더라도 책임 있는 정치지도자라면 그건 명백한 반헌법이고 불법이라고 말해야 한다. 야권주자들 의도대로 대통령이 당장 하야한 뒤 조급하게 대선을 치르면 혼란이 극심해질 수밖에 없다. 후보 검증 과정이 생략되면 또 다른 ‘박순실’ 대통령을 뽑는 깜깜이 선거가 된다. 5년 후 다시 촛불이 광화문을 덮쳐도 괜찮다고 보지 않고서야 이래서는 안 된다.

정치지도자는 탄핵안이 가결되면 헌재 심판을 기다리자고, 이젠 법치로 돌아가자고, 대선게임은 공정해야 한다고 촛불 민심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국민과 나라를 위한 충성심이 필요하다. 난세엔 용기 있는 지도자가 돋보이는 법이다.

9일 탄핵안이 국회서 가결된다면 그 이후 촛불의 행로는 어디로 향할 것인가. 여의도와 헌법재판소, 황교안 국무총리를 촛불로 포위하자는 소리가 나온다. 선동과 동원의 유혹이 커질 것이다. 그러나 촛불시위가 축제를 넘어 폭력이 되면 더 이상 민심이 아니다. 촛불이 충동성과 공격성을 띠게 되면 반동의 힘도 커진다. 진영 대결이 격화되면 나라가 산산조각 날지 모른다. 촛불축제는 축제로 끝내자. 마무리는 정치권에 맡기고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촛불 민심이 앞으로 해야 할 일은 광장의 의지를 선거 참여 열기로 이어가는 노력이다.

백영철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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