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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문화재] 일본 정원의 시조는 백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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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12-07 21:25:47 수정 : 2016-12-07 21:2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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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원과 관련한 문화가 확산되면서 중국과 일본의 정원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일본에는 명승으로 지정된 정원만 해도 230여 개가 되고, 중국은 2013년에 중국원림박물관을 개관하고 세계에 자국의 원림문화를 전파하고 있다. 한·중·일 삼국의 정원에 대해서는 당초 중국의 사상, 양식이 한반도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다소 변모를 보이고 일본에서 독자적 발전을 이뤘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언뜻 보면 한국의 정원은 특징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일본에 정원술을 최초로 전파한 것은 백제라는 사실이 일본의 역사서에 적혀 있다. 또 신라시대까지 영향관계가 깊었다는 사실은 우리 정원문화의 우수성을 증명하는 것이다.

일본 최고의 역사서인 일본서기에는 “추고천황 20년에 백제로부터 귀화한 자가 있었는데 백점병을 앓고 있어 섬에 버리려고 했다. 그러자 자신은 산악의 모양을 잘 만들 수 있으니 머물러 쓰게 해주시면 나라에 이로울 것이라 하였다. 그리하여 수미산과 오교를 남정에 만들라고 명하니 그의 이름은 노자공이다”라는 내용이 있다. 존 카터 코벨은 노자공이 수미산의 모형과 오교를 만든 것은 일본 정원문화 형성을 입증할 수 있는 중요한 사건일 뿐 아니라 일본 정원술의 효시가 백제, 즉 한반도임을 알려준다고 밝힌 바 있다. 일본정원 전문가인 오노켄키치는 아스카시대의 정원디자인은 추고천황 이후 백제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고 신라와 국교를 회복한 천지천황 이후는 신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학설을 제기했다. 실제로 신라 동궁월지(사진)의 돌을 쌓아 호안을 두른 것, 석조시설과 중도배치는 일본의 비조경적원지 유구와 매우 흡사하다.

최근 신라왕경에 복원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정원유적의 복원도 중요한 사안이다. 그러나 장구한 세월 동안 변화된 땅에서 정원 원형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우리가 조경술을 전해준 일본 정원 유적에서 신라인의 흔적을 찾을 수 있지는 않을까.

국립문화재연구소 이원호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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