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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영현기자의역사항쟁지다시보기] 봉오동 전투 숨은 영웅 최운산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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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12-09 01:02:50 수정 : 2016-12-09 01:0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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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운산 장군은 봉오동전투와 청산리전투를 이끈 군무도독부와 북로독군부, 북로군정서 등 세 무장부대를 창설한 실제 주역임에도 행적과 활동상은 극히 일부만 알려져 있다.”

지난달 4일 서울 종로구 관훈클럽 신영연구기금회관에서는 최운산기념사업회 창립 행사가 열렸다. 윤경로 전 한성대 총장이 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맡았고, 이장희 전 한국외국어대 부총장 등 학계와 언론계 등 56명이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1920년 독립군 부대가 대승을 거둔 봉오동전투 전적비와 ‘항일투쟁의 숨은 주역’으로 불리는 최운산 장군의 초상화(작은 사진).
독립기념관 제공
지금까지 봉오동전투는 독립군 연합체인 대한북로독군부가 주도했고, 대한북로독군부를 이끈 것은 홍범도, 최진동, 안무 등이라고 알려져 있다. 청산리전투와 관련해서는 김좌진의 북로군정서군과 홍범도의 대한독립군이 주축이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기념사업회 측은 만주지역 독립운동의 인적 물적 토대를 쌓고 만주지역 독립군에 무기와 군자금을 제공해 봉오동·청산리전투 승리를 이끌어낸 것이 최진동, 최운산, 최치흥 삼형제이고, 그중에도 최운산의 역할이 지대했다고 보고 있다.

최운산은 1885년 함경북도 온성에서 태어났다. 삼형제의 둘째인 그는 형 최진동, 동생 최치흥과 함께 강력한 무력투쟁만이 국권을 회복하는 길이라 믿고 1908년 청의 군대에 들어갔다. 최진동은 청나라 지방 군대의 고급간부가 됐고 지방 군대의 보위단 간부를 지냈다. 동생도 보위단 간부로 근무했다.

최운산은 상당한 사업 수완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봉오동, 도문, 석현, 서대파, 양수천자 일대 토지를 거의 소유했고, 또 제면, 제유, 성냥, 비누 등 여러 공장을 운영하고 축산과 곡물무역으로 거액의 재산을 모았다. 그는 이 자금으로 당시 황무지였던 봉오동을 매입해 개간하고 마을을 만들었다.

그는 애국 청년들을 결집해 자위대를 양성한 뒤 1919년 독립군 부대인 군무도독부로 발전시켰다. 이듬해에는 독립군 연합부대인 북로독군부 창설을 주도해 봉오동전투에 참전하고 나자구 전투, 대황구 전투, 안산리 전투 등에서도 활약했다. 무장부대 창설 과정에 자금을 댔고 사격과 첩보전에도 능했다고 전해진다.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은 창립식에서 “지금까지 우리는 홍범도, 김좌진 장군을 언급해 왔지만, 이 지역(만주)에서 오랫동안 독립전쟁을 위한 인적 물적 기반을 구축해온 주역들은 외면해 왔다”고 말했다.

류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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