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우 감독의 신작 ‘판도라’가 8일 개봉했다. 역대 최대 규모의 강진과 이로 인해 한반도를 위협하는 원전사고까지. 영화는 예고 없이 찾아온 대한민국 초유의 재난 속에서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한 평범한 사람들의 사투를 그린 재난 블록버스터다.
양경미 영화평론가·한국영상콘텐츠산업연구소장 |
우리나라가 전 세계 원전 밀집도 1위 국가임을 경고한다. 현재 국내에는 4개의 원자력발전소가 있고 여기 모인 총 24기의 원자로가 가동되고 있다. 문제는 원자력발전소 단지 반경 30㎞ 이내에 9개의 광역자치단체와 28개의 기초자치단체가 밀집해 있다는 것이다. 영화는 지진에 의한 원전 폭발로 인근 도시의 많은 사람들이 심각한 피해를 입는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묵직하면서도 현실감 있게 전달되는 영화 속 재난은 그 자체가 교육이자 공포다. 영화 속 지도자의 무능함과 시스템의 부재는 우리를 더욱 공황상태로 몰고 간다. 재난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는 국가 지도자, 위기관리 매뉴얼이 없다는 장관,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도 자기 잇속을 따지는 원전마피아, 아무런 대책 없는 공권력, 이러한 모습에 우리의 현실이 겹쳐지면서 극도의 공포감이 유발된다.
원전시설과 원전사고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된 최첨단 컴퓨터그래픽(CG)이 다소 과장돼 보인다. 현실을 떠올리게 하는 직접적인 대사는 작위적이다. 신파적 구성도 아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판도라’는 사실적이고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이는 박정우 감독이 보여준 현실 직관 능력 때문일 것이다. 그는 2012년 영화 ‘연가시’를 통해 메르스 사태를 예견한 바 있다. 영화적 상상을 넘어 그의 직관이 다시 재현되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불안해하는 이유다.
영화를 본 관객들은 대부분 원자력의 공포를 인지하고 원전 추가 건설을 반대하며 탈핵을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는 6기의 원자력발전소를 추가로 건설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4기를 더 세울 계획이다. 늘고 있는 전력수요를 감안하면 대안 없이 원자력 발전을 포기하기란 쉽지 않다. 차선의 해법은 절전을 생활화해서 전력수요를 줄이고 동시에 원자력 발전에 대한 안전규제를 한층 강화해 재해에 따른 대형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다. 영화 ‘판도라’가 우리에게 전하는 경고를 결코 가볍게 들어서는 안 된다.
양경미 영화평론가·한국영상콘텐츠산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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