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통화한 서울지역 법원의 한 판사는 착잡함을 감추지 못했다. 고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망록이 최근 공개되면서 청와대가 ‘상고법원’을 미끼삼아 사법부를 입맛대로 조종하려 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증폭된 탓이다. 비망록에는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지시한 것처럼 해석되는 ‘법원을 길들여야 한다. 법원의 숙원사업 중 하나인 상고법원으로 협상을 하는 등 모든 방법을 동원할 것’이라는 대목이 나온다.
장혜진 사회부 기자 |
그런데 문제의 비망록에 사법부 불신을 초래할 수 있는 상고법원 관련 내용이 언급되면서 다시 도마에 올랐다. 비망록에는 ‘비위법관(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무죄 판결을 비판한)의 직무배제 방안 강구 필요’ ‘전교조 가처분인용 집행정지 취소토록 할 것’이라고 적혀 있고 실제 의심할 만한 일이 벌어진 정황도 있다. 물론 김 전 실장은 “전혀 그런 지시를 한 바 없다”고 주장했다. 대법원 측도 청와대와의 거래설에 대해 “상고법원 무산은 청와대의 반대도 한몫한 것으로 아는데 얼토당토않다”고 일축했다.
정의의 마지막 보루인 사법부의 입장을 믿고 싶다. 그러나 일선 판사들조차 “청와대가 사법부를 길들이려고 한 때와 대법원이 상고법원 설치를 밀어붙인 시점이 절묘하게 맞고 서로 내통한 듯한 인상까지 주는 데도 대법원장은 아무런 설명이 없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양 대법원장의 침묵이 길어져선 안 될 것 같다.
장혜 진 사회부 기자 jangh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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