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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미의 엄마도 처음이야] <36>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워준 첫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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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12-10 14:10:00 수정 : 2016-12-10 14:5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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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가 고양이를 키우게 됐어?”

아이와 고양이가 함께 생활하는 걸 보며 주변 사람들로부터 가끔씩 이러한 질문을 받는다. 7∼8년 전쯤, 지금은 인기 웹툰이 된 채유리 작가의 ‘뽀짜툰’을 보며 ‘언젠가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고 막연하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부모님과 함께 생활하던 때라 내 마음대로 식구를 늘릴 수 없었고, 한 생명을 끝까지 책임지기에는 내가 너무 부족한 사람으로 느껴졌다.

취직과 결혼의 관문을 넘은 뒤 남편에게 “고양이 키우면 안 돼?”라고 물었다. 남편은 싫다고 했다. 이 때도 배우자가 싫다는데 내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었고, 여전히 생명을 책임지는 일의 무게가 부담으로 느껴졌다.  약 3년 전 우연한 만남이 아니었다면 우리 부부에게 ‘고양이 가족’은 결코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2014년 1월의 어느 주말, 나는 동네 편의점에 가고 있었다. 매서운 추위에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고 길가는 조용했다. “냐∼옹, 냐∼옹” 고양이 울음 소리만 아파트촌을 울렸다.

‘웬 고양이지?’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건물 입구 옆에서 몸을 웅크린 고양이를 발견했다. 입구 출입문이 닫혀 있어 밖에서 몸을 떨고 있었다. “야옹아 이리 와봐” 나는 양손을 내밀며 말했다. 신기하게도 고양이가 내 앞으로 왔다.

게티이미지 제공
 너무나 깡마른, 뼈조각을 맞춰놓은 것 같은 고양이였다. 길에서의 고단함 정도가 아니라 고통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뻣뻣한 털은 살이 없어 푹 꺼져 있었고 얼굴은 얼룩덜룩 했다. 편의점으로 데려가 고양이 캔을 사 먹였다. 캔에 조그만 입을 부딪치며 허겁지겁 먹었다. 신랑에게 전화를 했다.

“고양이를 우연히 만났는데 너무 안 됐어. 진짜 이렇게 마른 고양이는 처음 봐. 너무 추운데 잠시 집에 들였다가 입양 보내면 안 될까? 제발….” 날은 찢어질 듯 춥고 작은 생명은 아사 직전의 상태임을 강조했다. “그래, 데리고 와봐.”

집에 들어가자마자 냥이를 화장실로 데려갔다. 욕조에 넣고 샤워기로 따뜻한 물을 뿌렸다. 고양이는 격하게 울면서도 욕조 밖으로 나가지는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낯선 장소, 낯선 사람, 물 공격에 얼마나 공포스러웠을지 미안해진다. 더구나 씻긴 다음, 지금 냥이들에게는 상상조차 못하는 드라이기질까지 해댔다. “끄르릉∼” 냥이는 신음 소리를 내며 싫은 내색을 했다.

  털이 마를 때까지 만져준 뒤 담요로 고양이를 감싸고 동네의 작은 동물병원을 향했다. 의사는 길고양이냐며 길다란 플라스틱 막대를 냥이의 항문에 집어넣었다. 돋보기로 내용물을 확인하고는 기생충이 좀 있다고 했다. 약을 들고 고양이 사료와 화장실 모래를 사서 집으로 왔다.

나는 라면 박스를 반으로 잘라 그 안에 모래를 부었다. 배변 훈련을 따로 하지 않아도 냥이가 본능적으로 모래를 이용해줄지 걱정스러우면서도 두근두근 했다. ‘임시 화장실을 잘 써 주려나.’

 다음 날 아침 나는 눈을 뜨자마자 거실에 놓인 냥이 화장실로 달려갔다. 밤 사이 고양이가 내가 만들어준 화장실에 정확히 물질을 떨어뜨리고 모래로 덮었다. 얏-호. 기쁨의 환호가 터져나왔다. 이 아이가 가장 기본적인 동거 규칙을 제대로 지킨 것이다. 라면 박스에 숨겨진 구수한 물질을 치우며 나는 우리가 함께 지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신랑에게 냥이의 ‘큰 일’을 칭찬하며 이런 애라면 함께 지내도 괜찮지 않겠냐고 떠봤다.

만난지 일주일만에 세상을 떠난 고양이 ‘옥경이’. 집에 온 첫날 씻고 난 후의 모습. 사진에서는 작아보일 뿐이지만 실제로는 뼈만 남은 상태였다.
냥이는 둘째 날 거실을 돌아다니며 탐색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걸음걸이가 이상했다. 뒷다리를 절뚝거렸다. 높이뛰기 선수인 다른 고양이들과 달리 거실 소파조차 오르지 못했다. “길에서 교통사고를 당했었는데 이후 뼈가 이상하게 맞춰진 거 아냐?”, “살이 좀 찌면 나아지려나” 비쩍 마른데다 절뚝거리기까지 해서 애처로움은 더욱 커졌다. 나는 닭가슴살과 북어를 삶아 먹였다. 한 번에 많이 먹지는 못했다. 녀석은 나와 신랑에게 다가와 얼굴을 부비댔다. 얌전했고 착했다. 남편도 이 고양이가 마음에 든다며 옥경이로 부르자고 했다. 동거를 허락했다. 나는 프러포즈를 받은 것처럼 설레었다. 당장 냥이 화장실과 옷, 침대로 쓸 (반려동물용) ‘떡실신 쿠션’을 인터넷 상점에서 주문했다.

그런데 3일째부터 이상한 증상이 나타났다. 냥이가 거실 테이블 밑에 축 늘어져 나오지 않았다. 냥이 옆에 사료와 삶은 닭가슴살을 놓고 “옥경아, 이것 좀 꼭 먹어”라고 말한 뒤 출근했다. 퇴근 후에도 냥이는 여전히 테이블 밑에 있었고 음식에는 전혀 입을 대지 않았다. 하루 종일 아무 것도 먹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이 고개를 들었지만 애써 외면했다. “너 지금 낯 가리는 거야? 좀 나와봐.” 애원하면서 음식을 권했다.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렇게 밤 12시가 되자 나는 도저히 무시해서는 안 되는 나쁜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느꼈다. 냥이는 네 발을 앞뒤로 쭉 뻗은 채 눈조차 제대로 뜨지 못했다. 소리를 내지 않았지만 고통스러워 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눈물이 쏟아졌다. 애써 외면했던 불안이 한꺼번에 터져나왔다. “옥경이가 아픈 가봐. 얘를 큰 병원에 데려가자” 나는 엉엉 울면서 신랑에게 말했다.

24시간 진료 가능한, 의사에 대한 평이 좋은 병원을 찾았다. 새벽 1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의사는 냥이를 보더니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마른 고양이는 처음 본다고 했다. 나는 오늘 하루 냥이가 보인 모습과 다리를 절룩거리는 상태를 설명했다. 의사는 영양상태가 심각하기 때문에 일단 입원을 시킨 뒤 각종 전염병 감염여부를 검사하자고 했다. 다리 부분은 엑스레이 촬영을 하겠다고 했다. 길고양이인 만큼 양심상 병원비의 절반만 받겠다고 말했다.

길에서 쫓겼던 옛날은 잊고 무방비 상태의 남자가 되어버린 첫째 고양이.
다음 날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냥이가 ‘범백혈구 감소증’(범백)에 걸렸고 상태가 심각하다고 했다. 바깥 생활 중에 감염됐고 잠복기를 거쳐 발병한 것이라고 전했다. 엑스레이 촬영 결과 다리 뼈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했다. 추운 곳에서 아주 오랫동안 웅크리고 있으면서 근육이 굳었고, 그 때문에 뒷다리를 뻗지 못하게 된 것 같다고 했다.

 옥경이는 영역싸움에서 밀린 고양이었을 것이다. 캣맘이 주는 사료든, 쓰레기통에 든 음식물이든 먹을 것에 접근하지 못했을 뿐더러 온기를 얻을 만한 곳조차 마련하지 못해 한 겨울 추위를 제 자신의 체온으로만 견딘 고양이었던 게 분명했다. 온 힘을 다해 네 발을 몸통에 붙이고 있으면서 다리가 굳은 것이었다.

나는 냥이를 보러 병원에 갔다. 아픈 와중에도 녀석은 나를 보고 “냐∼옹” 크게 울었다. 그러고는 침처럼 투명한 토사물을 계속 쏟아냈다. 꿀럭꿀럭 온 몸을 비틀며 힘겹게 내뱉었다. 더 이상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무기력함에 눈물이 흘렀다.

 입원 4일째 아침, 의사의 안타까운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렸다. 고양이가 너무 고통 받고 있는데 보내주는 게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의사의 떨리는 목소리에서 꺼져가는 생명의 몸부림을 지켜보고 있음이 느껴졌다. 나는 안락사의 경우 죽음의 고통을 느끼냐고 물었다. 수면 마취할 때처럼 잠드는 것, 영원히 깨어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냥이는 나와 만난지 일주일만에 세상을 떠났다.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세상에 태어나 배고프고 춥고 온갖 고통을 겪다 떠났다는 사실에 가슴이 아팠다. 집에는 고양이 화장실과 떡실신 쿠션이 주인을 잃은 채 포장 그대로 있었다. 누굴 만나도 무엇을 먹어도 우울했다. 태어나서 사람에 쫓기고 동족에게 쫓기고 추위에 떨었던 녀석, 숨지기 직전 극한의 고통에 몸부림 친 녀석의 삶이 가여워 눈물이 났다. 그 녀석의 평생에 따뜻했던 순간은 녀석을 핥아주었을 어미 고양이와의 시간과 나와의 3일밖에 없었을 테다. 고통스러운 시간에 비해 온기는 너무나 짧지 않았던가.

 나와 신랑은 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반려동물 장례업체에서 옥경이를 보냈다. 박스에 담긴 녀석의 사체를 그곳에서 꺼냈다. 옥경이는 앞발로 얼굴을 감싸고 눈을 감고 있었다. 편안해보이는 모습이었다. 그 아이를 위해 나는 울었다. 생의 마지막에 울어주는 이가 있다면 그 인생이 불쌍하기만 한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리고 반려동물 화장터에서 예상치 못한 위로를 받았다. 그곳에는 납골당이 있었다. 주로 강아지들의 사진과 장난감, 과자, 편지글이 작은 사물함 크기의 묘소에 담겨 있었다. 옥경이가 재로 변하는 동안 각 묘소에 있는 잘 보이도록 꽂혀진 사람들의 편지를 읽었다.

게티이미지 제공
“내가 어렸을 때 너를 질투해서 많이 괴롭혔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게 너무 미안해. ㅇㅇ야 보고 싶고 사랑한다.”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스럽게 쓴 손편지에는 동물가족을 생각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한 아주머니는 내가 화장터에 도착하기 전부터 떠날 때까지 같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 분이 죽은 강아지를 위해 마련한 납골당 앞에서 강아지 사진을 어루만지고 과자를 바꿔주었고 아주 오랜 시간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 침묵에서 아주머니의 사랑이 느껴졌다. 그곳에 모여 있는 수많은 마음이 나를 달래주었다. 어떤 사람들은 하찮게 생각하는 생명일 수 있지만 그런 생명을 이처럼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음을 느꼈다. 그들과 함께 살고 있음에 위안을 얻었다.

 “다른 고양이를 키워보는 건 어때? 죽은 고양이를 잊지는 못하겠지만 새로운 생명으로 인해 마음이 편해질 거야. 또 옥경이가 그렇게 떠났는데 그 아이를 위해서라도 힘들어 하는 고양이를 거두면 좋지 않을까?” 소꿉친구는 소식을 전하는 내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나와 마찬가지로 충격을 받은 신랑도 다른 생명과의 동거를 허락했다.

몸집이 작은 옥경이를 위해 샀던 분홍 옷을 꽉 졸리게 입고 ‘떡실신 쿠션’에 오른 첫째 고양이. 분홍 왕자님이 됐다.
그렇게 한 달 뒤 추위에 떨다 마음 착한 여학생에게 구조된 고양이가 우리집 첫째 냥이가 됐다. 혈기왕성한, 다이어트가 필요한 장난꾸러기와 3년째 지지고 볶고 있다.

이현미 기자 engin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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