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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진정한 힐링은 ‘내면의 쉼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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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12-14 21:56:37 수정 : 2016-12-14 21:5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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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healing)과 킬링(killing)은 상보적이자 상반적이다. 힐링은 킬링을 치유한다. 반면 킬링이 없다면 힐링할 필요가 없다. 여기서 킬링은 기진맥진하게 만드는, 혹은 지치게 한다는 의미다. 이런 점에서 지금 힐링이 필요하다는 것은 우리의 현실이, 처한 상황이 킬링 사회란 방증이다. 모두를 지치게 만드는 킬링 사회를 유피미즘(euphemism)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힐링 사회가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왜 힐링이 사회·문화적인 현상으로 바람을 타고 있을까.

더욱 ‘치열해져가는 경쟁’ 때문이다. 경쟁은 필연적으로 스트레스를 낳는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 될 정도로 몸과 마음을 힘들게 한다. 아이들은 좋은 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치열하게 학습경쟁을 해야 한다. 이런 입시환경은 학생들에게는 커다란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청춘들도 예외는 아니다. 지금의 청춘들은 청춘이란 말만 들어도 가슴이 뛰는 그런 청춘들이 아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직을 하지 못해 방황하는 청춘들이 얼마나 많은가. 아프니까 청춘이란 말은 어쩌면 호사스러운 말인지도 모른다. 


한병선 교육평론가
어른들이라고 다르지 않다. 아이들이 학습경쟁, 청춘들이 취업경쟁을 한다면 어른들은 생존경쟁을 해야 한다. 이 생존경쟁은 더욱 혹독하고 치열하다. 오직 능력자만이 살아남는 정글의 법칙이 작용한다. 전쟁터 같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쳐야 한다. 낙오하게 되면 그대로 단애 아래로 수직낙하하고 만다. 이런 두려움 때문에 모두가 앞만 보고 달린다.

‘인간소외’의 문제가 스며 있다. 한병철의 책 ‘피로사회’에 의하면, “오늘날의 사회는 성과사회다. 성과사회의 피로는 사람들을 개별화시키고 고립시키는 고독한 피로”라고 지적했다. 이런 속에서 인간은 ‘물격화(物格化)’되어 간다. 물격화된 인간은 더 이상 서로를 끌어당기지 않는다. 자석의 양극 역할을 하던 인격은 물격화에 의해 자성(磁性)으로 기능하지 않는 탓이다. 유탈된 인간들은 고립된 섬, 즉 각각의 점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잠 못 드는 불면성’도 한몫한다. 우리는 숙면을 잃어버렸다. 전기는 우리에게 낮의 길이를 늘려주었지만 상대적으로 쉬어야 할 밤의 길이를 짧게 만들었다. 그 결과 쉬어야 할 시간에 쉬지 못함에 따라 몸과 마음은 더욱 면역성을 잃어간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사회적 구속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들을 여가란 이름으로 소비한다. 오늘날의 시대를 ‘여가의 대중화 시대’, ‘국민여가 시대’로 부르는 것도 그런 이유다.

여가를 소비하는 시간과 활동은 대부분 밤이다. 문제는 역설적이게도 이런 야생활(夜生活)의 불면성이 피로를 풀어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화려한 불빛 아래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해도 돌아서는 순간 공허함을 느낀다. 말은 재충전을 위한 여가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피로를 가중시킨다. 내면을 들여다보지 않고 경쟁적으로 여가를 상품으로 소비한 결과다. 진정한 힐링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육신의 피로가 아닌 ‘내면의 피로’를 푸는 것이 중요한 문제다.

한병선 교육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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