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양경미의영화인사이드] 영국병의 교훈 ‘나, 다니엘’

관련이슈 양경미의 영화인사이드

입력 : 2016-12-16 01:06:56 수정 : 2016-12-16 01:06:56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요람에서 무덤까지’는 과거 영국이 표방한 복지정책을 일컫는다. 출생에서 사망까지 국가가 사회보장을 책임지겠다는 것이다. 최근 영국 복지제도의 문제점을 담아낸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가 개봉했다. 심장질환으로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된 다니엘(데이브 존스)은 실업급여를 받으려 하지만 복잡한 절차는 그를 더욱 곤경에 빠뜨린다. 세계를 지배하던 영국이 과도한 복지와 정부의 개입 때문에 경제적 어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영국병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영화다.

켄 로치 감독의 특성이 잘 나타났다. 그는 그동안 사회적 약자나 소외계층 그리고 노동자의 삶을 영화로 대변해왔다. 2006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에서는 아일랜드 독립을 탄압하는 영국군의 잔혹함을 고발하면서 영화가 얼마나 정치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 바 있다.

양경미 영화평론가·한국영상콘텐츠산업연구소장
이번에도 그는 영국 사회의 부조리한 복지제도를 들추며 블루컬러의 삶을 리얼하게 그려냈다. 관료주의와 부조리한 제도로 인한 폐해를 고스란히 떠안게 된 주인공들, 그리고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돕는 다니엘을 통해 오늘날 영국의 암울한 현실을 신랄하게 꼬집는다.

그러나 영화는 정치영화에서 흔히 범할 수 있는 선동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따뜻하며 인간적이다. “복지는 정부가 가난한 자들을 위해 베푸는 선심이 아니라, 국가의 시민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할 권리”라는 그의 외침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켄 로치 감독은 이 영화로 올해 다시 한 번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80세 거장의 건재함을 입증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모든 유럽 국가들이 당면한 문제, 다니엘의 선언을 통해 큰 공감을 산 것이 수상 이유일 것이다.

영화는 과도한 복지로 무기력에 빠져 느려진, 열심히 일하지 않는 영국병에 대해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자본주의 사회의 비열하고 냉정함, 관료제의 허점과 문제점을 비판한다. 경쟁에서 밀리면 안 된다며 병든 노인을 일터로 몰아내고, 놀면서 돈 받겠냐며 비아냥댄다. 싱글맘은 일자리가 없어 매춘으로 생활비를 벌어야 한다. 그들은 기본적인 생활조차 유지하기 힘들다. 사각지대에서 억울함에 눈물짓는 그녀를 향해 다니엘만이 “네 잘못이 아니야”라며 위로한다. 영화를 본 관객들은 세계를 지배하던 영국이 왜 이렇게 되었는가 생각하게 된다. 과연, 무엇이 이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아친 것일까···.

지나친 선심성 복지정책과 과도하게 비대해진 공공부문이 일하지 않는 영국병을 만들어냈다. 생산성이 낮아져 산업 경쟁력이 약화되면서 실업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1980년대 들면서 마거릿 대처 총리는 과도한 복지를 줄이고 비대해진 공공부문을 축소하는 시장경제 개혁을 시도했지만 영국병을 고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아직도 영국은 영국병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며 최근에는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유럽연합에서 탈퇴하는 브랙시트를 시도했다.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복지지출과 청년실업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 우리에게도 많은 교훈을 시사한다.

양경미 영화평론가·한국영상콘텐츠산업연구소장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제나 '깜찍하게'
  • 정은지 '해맑은 미소'
  • 에스파 카리나 '여신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