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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눈] 고난대행 vs 준비된 자의 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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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12-22 01:21:34 수정 : 2016-12-22 01: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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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한대행도 하기나름… 고건과는 딴판인 황교안 2003년 초 새 정부 출범을 앞둔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 주변 386참모들에게 고건 총리는 그리 흡족한 카드가 아니었다.

노 당선자는 2002년 12월 16대 대선 엿새 뒤인 25일 고 총리를 직접 만나 ‘몽돌과 받침대’라는 표현을 써가며 총리 발탁 의사를 전했다. 그러나 일부 강성 386참모들 사이에서는 ‘코드’가 맞지 않는 고 총리에 대한 불만과 우려가 작지 않았다. 정권 첫해 청와대 386참모들과 고 총리 사이에는 껄끄러운 관계가 이어졌다. 강한 개혁성향의 386참모들에게 보수성향 총리의 국정운영 방식은 여러 면에서 탐탁지 않았고, ‘어떻게 하면 빨리 고 총리를 밀어낼까’ 궁리하고 있다는 말도 들렸다. 

박창억 정치부장
그러다 2004년 3월 12일 노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되며 고 총리가 권한대행을 맡게 된다. 고 대행의 행보는 조심스러웠고 신중했다. 고 총리 회고록과 인터뷰를 읽어보면 그는 청와대를 배려했고, 야당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신경을 많이 썼다.

탄핵 당일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동요 없는 국정운영’의 필요성을 강조하자, 최 대표는 ‘국정운영에 대한 협조’를 약속한다. 돌이켜보면 노무현정부 5년 중 청와대와 야당의 관계가 가장 원만했던 시절이 그 63일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권한대행 체제 기간에 큰 혼란없이 매끄럽게 국정이 운영되자, 그전까지 고 총리를 비판하던 청와대 386참모들 사이에서도 “고 총리에게 나라를 맡겨도 되겠다”, “고 총리를 모시고 일을 하고 싶다”는 농반진반의 찬사가 이어졌다.

지금의 황교안 권한대행은 영 딴판이다. 사사건건 야당과 부딪치며 연일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국회 대정부질문만 해도 그렇다. 결국 야당의 요구를 수용했지만, 당초에는 “전례가 없다”며 거부했다. 헌정 사상 대통령 탄핵이 두 번뿐인데 ‘전례’ 운운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어 보였다. 또 고건 대행 시절 야당이 요구한 것은 시정연설이었다. 회고록을 보면 고 대행은 야 3당 대표의 시정연설 요구가 내키지 않았지만 “원내 4당이 합의를 해오면 시정연설을 할 수도 있다”며 정면으로 맞서지 않는다.

인사 문제도 야당을 자극했다. ‘여·야·정 협의체’든 ‘야·정 협의체’든 국정 전반을 야당과 협의한다고 했으니, 사전에 야당에 귀띔 정도는 하는 게 좋았다. 정권이 바뀌어도 외국과 체결한 협정을 뒤집기는 어려운데, 지지층 결집이 목적인 야당 대선주자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연기 주장도 곧바로 정면 반박할 필요가 있었나 묻고 싶다.

황 대행의 거침없고 당당한 행보는 새누리당 일부 친박(친박근혜)계의 ‘황교안 대망론’과 결부돼 있다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는 지경이다. 얼마 전 만난 몇몇 친박 핵심 의원들도 “안정감이 있고 흠결이 없다” “깔끔한 국회 답변을 보면 국정 전반에 대한 이해가 잘 돼 있다”며 주저없이 황 대행을 ‘잠룡’으로 꼽았다.

황 대행은 2011년 부산고검장을 끝으로 검찰을 떠나며 퇴임사에서 박순길 시인의 ‘준비’를 인용했다.

‘배는 뜨기 위해/ 제 속을 다 파낸다/ 너는 뜨기 위해/ 속을 다 파내 본 적이 있는가// 변명은 하지 마라/ 운이 있다고 하나/ 그건/ 준비된 자의 덤일 뿐이다.’

권한대행에 대해 고 총리는 “고달프기만 한 고난 대행”이라며 푸념했는데, 황 총리는 ‘준비된 자의 덤일 뿐’이라고 여기는 걸까.

박창억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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