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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영현기자의역사항쟁지다시보기] 구국 집념 생생한 2·8독립선언기념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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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12-22 21:12:16 수정 : 2016-12-22 21: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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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찾는 한국 관광객이 연간 500만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도쿄를 방문한다. 올해도 겨울방학이 시작되면서 청소년을 동반, 일본을 방문하는 한국 관광객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도쿄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에게 2·8독립선언지인 재일본한국YMCA를 방문하라고 권하고 싶다.


일본 도쿄 지요다구 사루가쿠초에 있는 재일본 한국YMCA 건물 10층에는 2·8독립선언기념자료실이 마련돼 있다.
독립기념관 제공
1919년 2월 8일 도쿄유학생 600여명이 조선기독교청년회관에서 독립선언문을 낭독했다. 1918년 12월 15일 ‘The Japan Advertizer’에 재미동포들이 독립 요청 청원서를 제출했다는 내용을 담은 ‘한국인, 독립을 주장(Korea, Agitate for Independence)’ 기사와 세계약소민족동맹회의 2차 연례총회에서 약소민족의 발언권 인정 주장을 논의했다는 보도가 계기가 됐다. 재일유학생들은 조선청년독립단을 조직하여 독립선언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독립선언서의 문안 작성은 실행위원이었던 이광수가 담당했다. 백관수는 1919년 2월 8일 오후 2시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선언문 낭독을 통하여 일제의 군국주의를 강도 높게 비난하고 식민지정책의 부당성을 폭로하였으며 우리 민족이 독립국이라는 것을 세계에 알리고자 했다. 사흘 뒤인 12일에 재일유학생들이 다시 독립선언서를 발표하려 했으나 일본 경찰의 방해로 실패했다. 이 선언은 후에 3·1운동을 비롯한 독립운동에 큰 영향을 주었다. 재일 한국유학생들이 2·8독립선언을 했던 조선기독교청년회관은 현재의 조선기독교청년회관이 있는 곳에서 서북쪽으로 2km 정도 떨어진 지요다구 니시간다초 3정목 3번지에 있었다. 이 회관은 1914년 총공사비 3만원을 들여 건립한 2층 양옥 건물이었다. 그러나 1923년 9월 1일 관동대지진 때 소실됐다. 이후 조선기독교청년회관은 고이시카와구 오쓰카사카시타초 92번지로 이전했다. 1929년 다시 간다구 사루가쿠초 9번지로 옮겨와 지금의 도쿄 한국YMCA 건물이 건립됐다. 재일본 한국YMCA는 창립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2008년 5월 회관의 10층에 2·8독립선언기념자료실을 개관했다. 이곳에는 당시의 한국유학생들이 독립선언을 작성하고 발표하기까지의 경위와 운동의 전개과정, 국내 3·1운동에 미친 영향, 그리고 1923년 관동대지진 당시에 일제가 자행한 한인 학살 등에 관한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류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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