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특파원리포트] 비슷한 듯 달랐던 두 협상

관련이슈 특파원 리포트

입력 : 2016-12-26 01:01:36 수정 : 2016-12-26 01:02:26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일·러 쿠릴 4개섬 반환 협상 결렬
진정성 있는 대화로 실망감 없어
한·일 위안부합의 일방통보 분노
아베, 나눔의 집 찾아 사과·화해하길
지난 16일 도쿄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결과를 발표했다. 일본이 기대했던 쿠릴 4개섬(일본명 북방영토)의 일본 인도 문제에 대해서는 진전이 없었다. 일본은 3조원 규모의 경제 협력을 약속했지만 러시아의 양보를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그 섬에 살았던 일본인들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꿈에 부풀어있다가 낙담했다. 그렇지만 그들의 실망감이 아베 정권에 대한 분노로 바뀌지는 않았다. 러시아와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아베 총리가 북방영토 실향민들과 진정성을 갖고 대화해왔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는 과거 쿠릴 4개 섬에 거주했던 일본인 모임 관계자들을 총리 관저로 초청했다. 북방영토 실향민들이 직접 쓴 ‘망향의 편지’를 푸틴 대통령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러·일 정상회담이 끝난 뒤 아베내각의 지지율(12월17∼18일 교도통신 조사)은 한 달 전보다 5.9%포인트 떨어졌다. 정상회담에 대한 실망감이 반영된 것이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아베 총리의 지지율은 54.8%에 달했다. 지지율 붕괴 사태는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지난해 12월28일 서울에서 한국과 일본 정부는 ‘위안부 문제에 관한 한·일 합의’를 깜짝 발표했다. 박근혜 대통령이나 아베 총리가 담판을 한 것도 아니었다. 정식 합의문도 없었고, 양국 외교장관이 발표문을 읽었을 뿐이었다. 더구나 아베 총리의 직접적인 사과도 담기지 않았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실망하는 것은 당연했다. 당시 박 대통령은 위안부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지 않았다. 정부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도 않았다. 정부끼리 합의했다는 일방적 ‘통보’만 있었다. 위안부 피해자들은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 정부는 위안부 합의로 앓던 이를 빼낸 것처럼 시원해했다. 이로써 위안부 문제를 ‘최종적이고 되돌릴 수 없게’ 해결했다고 국제사회에 홍보했다. 일본은 위안부 합의 1주년을 앞둔 요즘 합의 백지화 가능성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최근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터진 이후 한국의 유력 정치인들이 잇달아 박근혜정부의 잘못된 외교 사례로 위안부 합의를 거론하면서 무효화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상규 도쿄특파원
일본 입장에서는 어렵게 통과한 장애물을 다시 넘어야 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으니 달가울 리 없다. 그런데 이 문제가 다시 불거진 이유를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문제의 당사자를 제쳐놓고 이뤄진 정부 차원의 합의는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 없다. 한국 정부의 잘못이 커 보이지만 일본 정부도 ‘끝난 일’로 치부하다가는 더 큰 역풍을 맞을 수 있다.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의 시민단체와 역사학자들이 잘못된 합의라고 비판하는 목소리를 귀담아들어야 한다.

용서와 화해는 피해자의 몫이다. 정부든 시민단체든 주변에서 아무리 ‘충분하다’고 떠들어대도 소용없다. 피해자가 받아들여야 비로소 끝이 난다. 그들이 원한 것은 ‘일본 정부의 진심어린 사과’였다.

한국과 일본은 동북아시아에서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공유하는 중요한 동반자 관계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미·중의 패권 다툼이 본격화하고 있는 시점에 한·일은 태평양 지역의 안정과 평화를 지키기 위한 균형추 역할을 할 수 있다. 손을 맞잡아야 할 소중한 우방인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협력이 절실해진 시기의 한·일이 과거사 문제에 발목이 잡혀 있다는 사실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 핵심은 위안부 문제다.

아베 총리는 26∼27일 미국 하와이 진주만을 방문한다. 1941년 일본이 기습공격을 했던 진주만을 찾아가 희생자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당시 미군 피해자들과 만나는 장면도 연출할 것으로 보인다. ‘미·일 간 과거사 문제의 화해와 매듭’을 널리 알리려는 의도다. 아베 총리는 한국에 대해서도 그와 똑같이 행동하면 된다. 미국에 할 수 있다면, 한국에도 할 수 있다. 한·미·일은 자유민주주의를 공유하고 있는 우방 아닌가. 아베 총리가 ‘나눔의 집’을 찾아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주름진 손을 잡고 사과와 위로의 말을 건네는 장면을 보고 싶다.

우상규 도쿄특파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아일릿 이로하 '매력적인 미소'
  • 아일릿 민주 '귀여운 토끼상'
  • 임수향 '시크한 매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