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백영철칼럼] 보수신당과 유승민, 그리고 반기문

관련이슈 백영철 칼럼

입력 : 2016-12-27 22:42:35 수정 : 2016-12-27 22:42:34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진짜 보수라면 정책대결의 길 가야
낡은 정치·무리에 머물면 희망 없어
보수주의 원조 격인 벤자민 디즈레일리는 “정치가란 그 시대의 피조물이고 상황이 낳은 자식”이라고 딱 잘라 말했다. 러시아 작가 레프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 초고에서 “역사적 인물이란 현재의 사건과 그보다 앞선 사건의 연관이 낳은 그 시대의 산물”이라고 정리했다. 영웅이 시대를 만드느냐? 아니면 시대가 영웅을 만드느냐? 라는 질문에 두 사람은 후자에 손을 들어주고 있다. 정치인은 시대적 상황의 산물이고 정치적 사건은 정치적 반작용의 결과라는 의미가 된다.

두 사람의 통찰에 부합하는 정치인을 한국에서 찾아보면 바로 김영삼 전 대통령(YS)이다. 군사독재 타도를 외치던 YS가 어느 날 안면을 싹 바꾸고 1990년 1월 군부 출신이 주류인 민정당, 공화당과 3당 합당을 했다. 디즈레일리와 톨스토이의 논법에 대입하자면, 이는 합당 2년 전 총선에서 민정당이 의석 과반을 차지하지 못해 여소야대가 만들어진 데다 김대중 전 대통령(DJ)이 이끄는 평화민주당이 2당이 되고 YS가 당수인 통일민주당이 3당이 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원내 3당의 당수인 YS는 DJ에게 지는 게 죽는 것보다 싫었고, 게다가 유리한 대선 경쟁 구도를 만들기 위해서는 4당 체제를 깨야 된다는 현실적 판단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거대한 보수정당 민자당의 탄생은 시대 상황과 사건의 연관이 이어지고 등장 인물들의 욕망이 맞물리면서 빚어진 피조물이었다. 


백영철 대기자 겸 논설위원
그때 만들어진 보수정당이 26년 만에 두 쪽으로 갈라졌다. 새누리당의 비박계 의원 29명이 어제 분당을 감행해 보수정당은 1990년 1월 이전 시대로 되돌아갔다. 결정론자의 시각에서 보면 자업자득이 아닐 수 없다. 인과관계로 따져봐도 우파 지도자인 박근혜 대통령의 무책임하고 어리석은 행동, 이를 맹종한 친박세력 탓이 크다. 여당의 원내대표를 배신자라며 쫓아내고, 그도 모자라 총선 공천에서 자파 세력을 늘리기 위해 동료들에게 인격말살의 총질을 해댄 곳이 보수정당 새누리당이었다. 급기야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터져 촛불민심이 대한민국을 뒤덮었는데도 박근혜 호위무사들인 친박들은 정의는커녕 양심마저 내버린 채 기득권 사수에 나서는 바람에 그 반작용으로 분당에 이른 것이다.
보수의 위기 속에서 깃발을 올린 개혁보수신당(가칭)이 친박세력의 헛발질로 국민적 지지와 대의명분은 잡고 있지만 처지는 고단하기 짝이 없다. 정치는 숫자로 하는 것인데 26년 전의 YS에 비하면 보수신당은 백척간두에 선 형국이 아닐 수 없다. 의원 숫자는 218석 대 29석, 규모에서 백칸 한옥과 단칸 판자집의 차이를 훨씬 넘는다. 삼국지에 비유하면 곡식 한 톨 없는 척박한 험지에 겨우 터를 잡은 유비의 신세라고나 할까. 내년 1월 추가 탈당이 이어지면 4당의 꼬리표를 떼고 3당으로 등급이 오르겠지만 3당이든 4당이든 숫자의 측면에선 도긴개긴이다.

미약한 세력의 결점을 메울 수 있는 것은 결국 정책과 사람이다. 진짜 보수를 하겠다면 보수주의의 맥과 정신을 이어받아야 한다. 보수는 기본적으로 강력한 안보, 역사와 전통 지키기, 질서와 연계된 개인의 자유와 재산권 보호, 사회 통합과 공동체 보존에 주력한다. 이 점에서 따뜻한 공동체를 지향하는 신당의 지향성은 보수주의 정신에 부합한다. 다만 신당이 경제정의 실현을 위한 개혁적 보수를 지향하고 있어 “진짜 보수 맞아?” 하는 비판론이 있다.

고장 나지 않았으면 고치지 말아야 하는 게 보수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고장이 나도 많이 난 상태다. 소득 분배의 심각한 불균형을 시정하는 것과 사회적 약자의 보호 책무는 보수의 가치가 명백하다. 공동체의 번영과 존속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경계할 것은 변화 그 자체가 우상이 돼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정책이 아무리 좋아도 손님이 모이지 않으면 헛수고다. 손님을 모으려면 널리 알려진 이름, 출중한 이력, 명곡을 불러대는 불멸의 솜씨, 상황을 돌파하는 동물적 정치감각, 넓은 바다와 같은 포용력이 있어야 한다. 이 다섯 가운데 세 개는 가져야 천하를 다툴 수 있다.

신당의 실질적 설계자는 유승민 의원이다. 박 대통령의 대척점에 서다 보니 정치적 흐름이 유 의원 중심으로 모아졌다. 유 의원은 정연한 논리와 해박한 지식에서 국회의원 중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사람이다. 박 대통령의 정치탄압을 두 차례나 묵묵히 이겨낸 맷집에서 대형정치인의 자질을 찾아볼 수 있다. 유 의원은 다섯 개의 정치지도자 덕목 가운데 솜씨와 이력은 그런대로 수준급이다. 그러나 두 개로는 대선가도를 완주할 수 없다. 이름을 더 알리거나 정치감각, 혹은 넓은 가슴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럴 때 보수신당은 대선정국에서 우익을 담당할 수 있고 설령 후보가 실패하더라도 당은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하기 위해 몸을 불사르겠다고 최근 출사표를 던졌다. 반 총장의 내년 초 귀국 이후 거취를 두고 ‘제3지대 연대론’ 등 다양한 시나리오가 난무하고 있다. 반 총장은 국제 선진 사회의 좋은 정치 현장을 두루 살펴 본 국제신사다. 그런 이력을 가졌는데도 좌고우면하며 간이나 보고 낡은 무리들과 이합집산해서야 이름값을 못한다는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진정 나라를 구하려면 새정치를 추구해야 하고 나라를 바르게 이끌 정책 경쟁에 집중해야 한다. 이 점에서 보수신당과 반 총장의 정치적 운명은 같은 길 위에 있다.

백영철 대기자 겸 논설위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아일릿 이로하 '매력적인 미소'
  • 아일릿 민주 '귀여운 토끼상'
  • 임수향 '시크한 매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