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밤을 떠돌던 방황도
오십령(五十領) 고개부터는
추사체로 뻗친 길이다
천명(天命)이 일러주는 세한행 그 길이다
누구와 눈물로도 녹지 않는 얼음장 길을
닳고 터진 알발로
뜨겁게 녹여 가라신다
매웁고도 아린 향기 자오륵한 꽃진 흘려서
자욱자욱 붉게붉게 뒤따르게 하라신다
정유년 새해가 밝았다. 한 해의 소망과 더불어 새로운 각오도 생각해보는 순간이다. 이때 부응하는 그림이 있다. 추사 김정희의 혼과 이상이 담겨있는 ‘세한도’(歲寒圖)다. 이 그림은 추사가 유배지 제주도에서 사제 간의 의리를 지킨 제자 ‘이상적’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그려준 그림이다. 이 그림을 대하고 있으면 한겨울 잣나무 소나무와 더불어 추운 방에서 글을 읽고 있는 한 선비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우선시상’(藕船是賞)이란 부제와 발문을 음미해가면 애제자 이상적에 대한 추사 선생의 인품이 화선지 속의 무늬처럼 아롱거린다. 모두 새해 아침을 정갈하게 하는 이미지다.
이 시를 쓴 시인은 유안진 선생이다. 교육학자 출신인 선생의 인품과 개성이 잘 반영되어 있지 않은가 싶다. 선생은 어느 모임에서 뵈어도 늘 겸손해하시며 후배 시인들 칭찬에 인색함이 없다. 따뜻한 언어로 항상 풍성하게 격려해주신다. 필자가 그동안 시인 사회에서 존경받으려면 ‘모름지기 이분을 닮아야지’ 했던 사람도 바로 유안진 선생이다. 이러한 인격의 결과였을까, 선생은 이 시로 제10회 정지용문학상을 수상한다.
김영남 시인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