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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남의월요일에읽는시] 세한도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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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1-02 01:12:19 수정 : 2017-01-02 01: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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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안진(1941~)
서리 덮인 기러기 죽지로
그믐밤을 떠돌던 방황도
오십령(五十領) 고개부터는
추사체로 뻗친 길이다
천명(天命)이 일러주는 세한행 그 길이다
누구와 눈물로도 녹지 않는 얼음장 길을
닳고 터진 알발로
뜨겁게 녹여 가라신다
매웁고도 아린 향기 자오륵한 꽃진 흘려서
자욱자욱 붉게붉게 뒤따르게 하라신다


정유년 새해가 밝았다. 한 해의 소망과 더불어 새로운 각오도 생각해보는 순간이다. 이때 부응하는 그림이 있다. 추사 김정희의 혼과 이상이 담겨있는 ‘세한도’(歲寒圖)다. 이 그림은 추사가 유배지 제주도에서 사제 간의 의리를 지킨 제자 ‘이상적’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그려준 그림이다. 이 그림을 대하고 있으면 한겨울 잣나무 소나무와 더불어 추운 방에서 글을 읽고 있는 한 선비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우선시상’(藕船是賞)이란 부제와 발문을 음미해가면 애제자 이상적에 대한 추사 선생의 인품이 화선지 속의 무늬처럼 아롱거린다. 모두 새해 아침을 정갈하게 하는 이미지다.

인용시 ‘세한도 가는 길’에서 시인은 추사의 세한도를 보고 추사를 시인의 가슴속 스승으로 모신다. 저 그림의 뜻은 이제부터 나의 시업도 이렇게 펼치라는 뜻이겠지 생각하며 교훈을 새긴다. 추사가 세한도를 그려 시인에게 주고, 시인은 그 그림을 받고 난 다음의 소감을 시로 피력한 것 같은 인상이다. 마치 제자 이상적의 자리를 시인이 대신하고 있는 듯하다.

이 시를 쓴 시인은 유안진 선생이다. 교육학자 출신인 선생의 인품과 개성이 잘 반영되어 있지 않은가 싶다. 선생은 어느 모임에서 뵈어도 늘 겸손해하시며 후배 시인들 칭찬에 인색함이 없다. 따뜻한 언어로 항상 풍성하게 격려해주신다. 필자가 그동안 시인 사회에서 존경받으려면 ‘모름지기 이분을 닮아야지’ 했던 사람도 바로 유안진 선생이다. 이러한 인격의 결과였을까, 선생은 이 시로 제10회 정지용문학상을 수상한다.

김영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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