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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추억은 추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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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1-02 01:12:53 수정 : 2017-01-02 01: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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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게임기를 들였다. 브라운관 모니터에 조이스틱과 버튼이 달렸고 동전을 넣어서 플레이하는, 옛날 오락실에서 흔히 볼 수 있던 기종이다.

처음 계획을 설명했을 때 주변의 반응은 회의적이었다. “게임은 컴퓨터로도 할 수 있지 않느냐” “쓸데없이 크기만 큰 게임기를 샀다가 애물단지로 전락할 것”이라는 의견이 이어졌다. 오기가 생겼다. 어릴 적 부모님의 눈을 피해 오락실로 발길을 옮기던 느낌과 PC 에뮬레이터로 흉내만 낸 것이 어떻게 같을 수 있단 말인가. 불량 청소년들의 아지트라는 말에 겁을 내면서도 자석에 끌린 것처럼 오락실을 찾던 추억을 꼭 집에다 재현하고 싶었다.

이우중 경제부 기자
그래서 주말 청계천의 한 전자상가를 뒤지고 다녔다. 게임 매장에는 LCD 모니터를 장착해 과거보다 화질이 대폭 개선되고 가정용으로 쓸 수 있게 크기도 줄인 제품이 많이 나와 있었다. 그래도 굳이 브라운관으로 된 오래된 기종을 고집했다. 다른 기종으로는 추억을 살릴 수 없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한참 발품을 팔고서야 관리가 잘된 중고 게임기를 발견했다. 달라는 대로 값을 치른 뒤, 영업시간이 끝나 집에 가야겠다는 용달기사를 웃돈을 주고 설득해 그날 설치까지 마칠 수 있었다.

동전을 넣고 게임을 실행하자 과연 그때의 추억이 눈앞에 펼쳐졌다. 처음에 코웃음을 치던 친구들도 와서 직접 해보고 난 뒤에는 꽤나 만족하는 눈치였다. 동전을 계속 넣어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게임의 엔딩을 보는 일도 가능해졌다. 도무지 일찍 뜨이지 않던 눈도 게임을 하겠다는 일념에선지 새벽같이 뜨였다. 가히 신세계가 펼쳐진 것이다. 처음 몇 주 동안은.

하지만 게임기가 항상 집에 있다 보니 아무래도 하면 할수록 ‘그때 그 맛’은 줄어드는 것이 사실이었다. 추억을 되새길지언정 그 추억이 일상이 돼버린 다음에야 늘 전과 같을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오래된 기기다 보니 관리도 만만찮았다. 처음에는 동전 넣는 곳이 고장났다. 드라이버로 역부족이라 전동드릴까지 동원한 뒤에야 고칠 수 있었다. 다음에는 모니터가 말썽이었다. 브라운관 모니터인지라 화면 곳곳에 멍이 들었다. 이를 해결하려면 소자코일(디가우저)이 필요한데 아직 구하지 못해 급한 대로 임시방편으로 처방했다. 이뿐 아니다. 볼륨 조정이라도 할라치면 기판을 열어야 한다. 얼마 전에는 동전통을 여는 열쇠를 잃어버려 돼지저금통 배를 갈라 동전을 충당하고 있다. 인터넷 카페 등에는 ‘고수’들이 넘쳐나 도움을 많이 받았지만 웬만큼 관심이 없으면 관리하기 쉽지 않았다. 이쯤 되면 추억은 추억으로 간직할 때 더 아름답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갈 것도 같다.

다만 확실히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어떤 기능이든 반복숙달을 통하면 발전할 수밖에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직접 겪은 후에야 다시 한 번 깨닫게 됐다. 처음에는 첫 스테이지를 넘기기 어려웠던 게임도 계속 반복하다 보니 실력이 느는 것이 눈에 보였다. 들인 시간과 넣은 동전에 비례해 점점 진행이 수월해졌다. 그러다 마침내는 원코인 플레이(동전 하나로 엔딩을 보는 것)까지 왔다. 그리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난 지금까지 뭘 한 거지?’

이우중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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