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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정글에 선 자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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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1-02 21:23:29 수정 : 2017-01-02 21: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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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종 12년, 1671년. 그해 보릿고개는 유난히 심했다. 음력 2월 곳곳에 굶어 죽는 사람이 속출했다. 2월 초 기록, “경상도 기민(飢民) 2만3553명, 평안도 기민 2만1648명, 함경도 기민 4868명…. 전라도에서는 정월 이후 239명이 얼어, 굶어 죽고 1752명이 여역으로 죽었다.” 여역은 돌림병이다. 2월말 기록, “경상도에 죽 먹는 곳에 나온 기민은 7만4850명, 죽은 사람은 90여명이다. 팔도에 기아와 여역, 마마로 죽은 백성은 이루 다 기록하기 힘들다.”

기근은 가장 큰 재앙이었다. 길가에 널브러진 사람들, 굶주린 아이 손을 잡고 유랑길에 나선 사람들. 이정악은 이때 진휼청 낭관이었다. 연안부사로 간 뒤 한 말, “음사(淫祀)에 재물을 허비하지 말라.” 그는 모든 음사를 허물었다고 한다.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모두가 굶주리는 판에 무엇에 복을 빌겠다는 건가.” 웬만한 선비를 눈 아래로 봤을 다산 정약용은 입이 마르도록 그를 칭송했다.

지금은 다르다. 보릿고개라는 말이 들리지 않은 지 오래다. 농업인구 256만명. 전체 인구의 5%다. 그래도 먹을 것이 남아도는 것은 생산력이 높아진 탓이다. 이제 재앙은 사라진 걸까. 아니다. 재앙은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자영업자는 하루 3000명쯤 생겨나고 2000명 정도는 문을 닫는다.” 2016년 국세통계연보에 나타난 실상이다. 무슨 뜻을 담은 수치일까. ‘산업사회의 기근 사태’라고 부를 만하다. 자영업자 둘 중 하나는 직장인 출신이다. 직장을 잃은 뒤 가족 생계를 꾸리기 위해 자영업에 뛰어든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이 문제다. 자영업자 비율 2013년 27.4%. 영국의 14.4%보다 배나 높다. ‘정글의 싸움’이 벌어질 테니 장사가 될 리 만무하다. 망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매일 망해 나가는 2000여명. 이들 가장은 절망의 벼랑에 선다. 맺히지 않은 이삭을 보며 굶주릴 처자식 걱정에 고개 떨군 농경사회 가장과 무엇이 다를까. “일자리가 늘어났다”고 했는가. 한심하기 짝이 없는 소리다. 경제가 죽으니 자영업자만 늘고 있지 않는가.

강호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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