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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기다립니다, 새날의 태양처럼 진실 떠오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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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1-05 10:30:00 수정 : 2017-01-05 10: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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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풍광, 즐거운 기억, 맛있는 음식만이 여행의 전부는 아니다. / 누군가와 공감하는 것 또한 여행이 될 수 있지 않을까. / 그것이 때로는 슬픔일지라도… 겨울의 진도는 기다림의 섬이다. / 그 대상이 따스한 봄일 수도, 사랑하는 누군가일 수도… 이 섬엔 해무가 자주 낀다. 염분기를 가득 머금은 해무는 바다에서 피어올라 스멀스멀 섬으로 퍼져나간다. 섬 구석구석까지 퍼진 해무는 대지에 가라앉는다. 염분이 내려앉은 땅은 겨울에도 얼지 않아 생명이 자란다. 눈이 내리더라도 뿌리는 얼지 않는다. 곳곳에서 위대한 생명의 힘을 느낄 수 있다.
팽목항 방파제 입구부터 빨간 등대까지 100m도 채 되지 않은 길엔 수많은 슬픈 사연과 이야기가 담겨 있다.

# 겨울에도 생명이 열리는 보배로운 땅

전남 진도의 겨울은 희지 않다. 오히려 봄처럼 초록빛이 한창이다. 겨울이되 겨울 같지 않다. 땅에서는 겨울 추위를 이겨내고 배추와 대파가 자라고 있다. 봄동배추가 한창 영양분을 머금은 채 출하되길 곳곳에서 기다린다. 멀리서 보면 한겨울 새싹이 철모르고 봄이 왔다는 듯 움트고 있는 것만 같다.
다른 지역이 눈에 덮여 하얗게 변했더라도 전남 진도에서 해안도로를 타고 돌면 곳곳에서 봄이 온 것인지 착각이 들게 하는 초록빛 풍경을 만날 수 있다. 겨울의 진도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매력이다. 멀리서 보면 한겨울 새싹이 철모르고 봄이 왔다는 듯 움트고 있는 것만 같다.
한겨울에도 농사가 가능한 곳이기에 ‘한 해 농사 지어 삼 년을 먹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진도는 어업보다 농업이 발달한 곳이다. 더구나 제주도와 거제도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큰 섬이다. 땅이 기름지다고 해서 옥주(沃州)라 불리기도 했던 진도(珍島)는 풍부한 농산물 덕분에 보배로운 섬이란 뜻이 있다.

다른 지역이 눈에 덮여 하얗게 변했더라도 진도의 해안도로를 타고 돌면 곳곳에서 봄이 온 것인지 착각이 들게 하는 초록빛 풍경을 만날 수 있다. 겨울의 진도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매력이다.
진도 곳곳엔 짙은 녹색의 잎 사이로 붉디붉은 동백꽃이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엄동설한에서도 꽃을 피우는 동백의 꽃말은 ‘기다림’, ‘고결한 사랑’이다.
초록색에 더해 진도 곳곳엔 붉은 점이 찍혀 있다. 짙은 녹색의 잎 사이로 붉디붉은 동백꽃이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동백꽃이 꽃망울을 터뜨리고, 그 모습 그대로 떨어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봄이 될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엄동설한에서도 꽃을 피우는 동백의 꽃말은 ‘기다림’, ‘고결한 사랑’이다. 사랑하는 이를 기다리다 숨을 거둔 여인에 대한 구슬픈 전설이 배어 있다.
세월호 희생자를 기억하기 위해 팽목항으로부터 4.16㎞ 떨어진 곳에 조성된 ‘기억의 숲’.
겨울이 살짝 비껴나간 진도엔 또 다른 기다림이 있다. 오는 9일이면 1000일이다. 생채기에 굳은살이 돋을 때가 한참 지났지만, 여전히 어제 난 상처처럼 아물지를 않고 있다. 눈시울이 붉어지고, 시야가 뿌예진다. 누가 강요한 것이 아니다. ‘공감’하기에 자연스레 나타나는 반응이다.

‘기억의 숲’은 지난해 4월 팽목항으로부터 4.16㎞ 떨어진 곳에 조성됐다. 아직 잎을 틔우지 못한 은행나무 300여그루에는 희생자들의 사진과 노란 리본이 달려 있다. 희생자 사진 밑에는 이곳을 찾은 이들이 쓴 메모가 붙어 있다. 필체도 다르고, 쓴 이도 다르고, 내용도 다르지만 ‘영원히 기억하겠다’는 문구만은 꼭 담겨 있다.
# 영원한 기억, 하염없는 기다림


‘기억의 숲’은 지난해 4월 팽목항으로부터 4.16㎞ 떨어진 곳에 조성됐다. 아직 잎을 틔우지 못한 은행나무 300여그루에는 희생자들의 사진과 노란 리본이 달려 있다. 희생자 사진 밑에는 이곳을 찾은 이들이 쓴 메모가 붙어 있다. 필체도 다르고, 쓴 이도 다르고, 내용도 다르지만 ‘영원히 기억하겠다’는 문구만은 꼭 담겨 있다.
숲 가운데 서 있는 조형물은 ‘기억의 벽’이다. 벽 외부에 304개의 접힌 면이 형성돼 있다. 희생자 수를 의미한다. 벽 안에는 희생자들의 이름이 하나하나 빼곡하게 새겨져 있다.

봄이 되면 은행나무에선 초록 잎이 피기 시작해 가을이면 기다림의 색인 노란색으로 물들 것이다. 1000년을 사는 은행나무다. 파수병처럼 오래도록 굳건히 자리를 지킬 것이다.

노란 깃발과 리본, 빨간 등대. 처음 팽목항을 찾은 이도 익숙한 풍경이다. 셀 수도 없이 신문과 방송에 나온 곳이다. 사고가 난 곳은 팽목항에서 약 30㎞ 떨어져 있다. 그마저도 팽목항 앞의 섬들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배를 타고 1시간30분가량 동거차도까지 가야 그곳을 볼 수 있다. 차로 갈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곳이 팽목항이다.

팽목항 방파제 입구부터 빨간 등대까지 100m가량의 길에는 수많은 슬픈 사연과 이야기가 담겨 있다. 노란 리본 조형물 아래 놓여 있는 꽃과 음식물, 전국 어린이들이 세월호 희생자를 기리며 그리고 쓴 4656장의 타일로 만든 기억의 벽, 희생자 이름의 초성을 새긴 타일 등 온갖 곳에 그리움이 넘쳐난다. 어디로 눈을 돌려도 마음이 아프다.
팽목항 방파제 리본 조형물 아래 놓여 있는 꽃과 음식물.
여행이 항상 좋은 풍광, 즐거운 기억만을 담아야만 하는 것은 아닐 테다. 누군가와 공감하는 것 역시 여행의 일부가 될 수 있다. 그것이 때로는 슬픔일지라도.

겨울의 진도는 기다림의 섬이다. 기다림의 대상이 따스한 봄일 수도, 사랑하는 누군가일 수도 있다.

진도=글·사진 이귀전 기자 frei592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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