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0일간 들불처럼 번진 AI로 양계농가는 그야말로 쑥대밭이다. 전국적으로 3000만마리가 넘는 닭과 오리가 살처분되었다. 국내에서 사육하는 가금류 5마리 중 1마리꼴이다. 정성들여 키운 닭과 오리를 파묻는 농민 마음이야 어떻겠는가.
걱정이 되어 충남 논산시 연산면 ‘지산농원’ 이승숙 대표와 통화했다. 1999년 기자로 일하다가 부친이 병상에 눕자 가업을 잇기 위해 회사를 떠난 선배다. 그가 기르는 건 보통 양계닭이 아니다. 볏과 털, 뼈까지 검은 국내 유일의 순종 ‘연산오계’(천연기념물 제265호)이다.
그는 기르는 닭들을 “애들”이라고 불렀다. “우리 애들이 감염될까봐 늘 가슴 졸인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공장형 밀집사육이 AI 확산의 한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닭을 옴짝달싹할 수 없는 좁은 공간에서 기르다 보니 자연 면역력이 떨어지고 바이러스에 취약해졌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애들’을 아예 방목해서 키웠다.
양계농가 사육 기준은 축산법 시행령으로 정해져 있다. 공장형 케이지에서 산란계를 키우려면 1마리당 최소 0.05㎡의 바닥 면적을 유지해야 한다. A4용지 한 장(0.062㎡)보다 좁은 공간이다. 바닥에 기르는 평사 방식이라면 3.3㎡(1평)에 30마리까지 키울 수 있다.
AI 사태에도 생활협동조합 한살림의 계란값은 서너 달 전과 변함없다. 양계농가와 농가 수입까지 반영해 가격을 미리 약정해 놓은 덕이다. 그렇더라도 AI로 공급에 차질이 빚어지지 않았을까. 물어봤더니 계란 납품 농가 33곳 중 1곳만이 AI 피해를 봤다고 한다. 모두 일반 농가보다 두 배 넓은 사육장에서 닭을 기르고 있다.
2003년 국내에서 처음 발생한 AI는 2014년부터 연례행사가 돼 버렸다. 이제 공장형 밀집사육 방식을 재고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굳이 동물복지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박희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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