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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혁명 1세대 라프산자니 사망

입력 : 2017-01-09 20:42:52 수정 : 2017-01-09 20:4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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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주의자… 미와 관계 개선 기여 / 로하니 대통령 재선 가도 ‘빨간불’
미국과의 관계 회복 등 실용주의 노선을 주창해 온 이란의 거물급 원로 정치인 아크바르 하셰미 라프산자니(83)가 8일(현지시간) 심장마비로 숨졌다. 미국 언론은 그의 죽음으로 서방과의 관계개선 전망이 어두워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란 국영방송은 이날 “라프산자니가 이슬람과 혁명을 향한 쉼없는 여정 끝에 천국으로 떠났다”고 그의 사망 소식을 알렸다. 라프산자니는 1979년 이란 이슬람혁명을 이끈 1세대로서 실용주의적 보수파로 분류된다. 그는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개혁 진영과도 손잡는 정치적 수완으로 오랜 기간 이란 정치계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라프산자니의 정적들은 그를 ‘미국식 이슬람 지지자’, ‘자본주의자’, ‘귀족’이라고 비판했다.

라프산자니는 이슬람혁명 직후인 1979년 11월부터 9개월간 혁명 정부의 내무장관에 임명되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1980년 이란 의회(마즐리스) 의장으로 선출돼 9년간 재임했다. 1989년 대선에서 당선 후 재선에 성공하면서 1997년까지 대통령을 지냈다.

1983년부터 사망 직전까지 34년간 국가지도자운영회의 위원 및 의장(2007∼2011년)으로 재직했다. 이 헌법기관은 최고지도자를 선출한다. 1989년부터는 국정조정위원회 의장까지 맡아 최고지도자 보좌, 국가정책 입안, 국회와 헌법수호위원회의 대립을 중재하는 역할도 했다. 대통령 재임 기간 이란·이라크전쟁으로 피폐해진 경제 재건을 위해 시장경제정책을 과감히 도입했다. 하지만 서방의 제재와 전쟁 후유증으로 큰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라프산자니의 전임 대통령은 현재 이란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다. 라프산자니는 하메네이가 최고지도자가 되는 데 기여했다. 권력 서열 2위인 대통령선거에도 영향력을 끼쳐 ‘노련한 킹메이커’로 불린다. 이란의 대표적인 개혁인사인 모하마드 하타미와 실용적 중도파로 분류되는 하산 로하니의 대통령 당선 등에 힘을 더했다. 하메네이는 이날 성명을 내고 “59년 전부터 우정을 나눈 동지이자 협력자를 잃어 가슴이 미어진다”고 애도했다.

그의 사망으로 미국 등과 관계개선을 노리는 이란 지도부는 적잖은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특히 오는 5월 대선에서 재선을 노리는 로하니 대통령으로서는 치명적 손실이다. 로하니는 하메네이 사후 최고 지도자를 승계할 후보로도 거론되는데, 라프산자니가 없는 상황에서 권력투쟁에서 승리할 확률은 훨씬 낮아질 수밖에 없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는 라프산자니의 죽음으로 이란 정치 지배층이 새로운 불확실성에 빠져들었다고 분석했다. 이란 지도부 내에 극단적인 반미세력의 입지가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워싱턴포스트도 정치·경제 개혁과 문화 개방을 추구하는 이란 온건 진영에 큰 공백이 생겼다고 지적했다.

정재영 기자 sisley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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