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콘도에 어디서 왔는지 모를 이방인이 들어와 이 마을 유일한 의사로 살았다. 그는 외국계 바나나농장이 들어와 진료소를 차리자 아무도 찾지 않게 된 공간을 지키다가 문을 닫고 만다. 이후 그는 철저하게 스스로 유폐되어 살아간다. 어느 날 바나나 회사 자본에 맞서 봉기했던 마을 사람들이 부상당해 이 의사의 집 문을 두드리지만 끝내 그는 응답하지 않아 두고두고 원수가 된다.
마콘도에 일찌감치 정착했던 대령과 그의 딸, 손자 3대가 이 남자와 맺은 인연 때문에 그의 장례식에 참석하는 게 이 소설의 기둥 구성이다. 대령은 아무도 가까이 하지 않는 그 의사와 유일하게 소통했고, 의사가 죽으면 반드시 대령이 공동묘지에 묻어주기로 약속을 한 터였다. 의사는 유폐된 채 스스로 죽어가다가 끝내 밧줄로 목을 매 자살한다. 가톨릭 계율이 엄격한 마을 공동체에서, 그것도 마을 사람들을 치료하지 않아 원수가 된 그 남자는 철저하게 외면을 받지만 모든 난관을 감수하면서 대령은 그를 매장하기 위해 찌는 듯 더운 날 시체가 있는 폐쇄된 공간으로 딸과 손자를 데리고 간다.
이날 오후 2시30분부터 관을 앞세워 길로 나서는 3시까지, 이들 3인이 각자의 시각으로 그간의 경과와 인연을 돌아보는 이야기가 이 소설이다. 이 작품에서도 그로테스크한 고독의 뿌리는 이미 보인다. 있는 게 분명하지만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은 가족,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고 오갈 데도 없었던 그 남자는 대령의 목숨을 구해준 뒤 이렇게 말했다. “대령님, 내게 호의를 베풀고 싶다면, 내가 빳빳하게 굳어서 새벽을 맞이했을 때 약간의 흙을 내 몸 위에 뿌려주십시오.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은 그게 유일합니다. 그래야 독수리들이 나를 먹어 치우지 않을 테니까요.”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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