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사태로 관심 멀어진 '김영란법'…고개 드는 고액접대

정치권·고위공직자 호화접대 후 현금결제로 증거 없애

단골집서 소액결제 후 회식 때 나머지 금액 결제 편법도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세칭 ‘김영란법’이 시행된지 3개월여가 지났다.

그간 선물, 접대 등이 대폭 감소해 사회 풍토가 일신됐다는 평가가 많다. 그러나 정치권과 관가 일부에서는 3개월만에 시행 초기의 자제 분위기가 크게 느슨해지면서 대기업 등으로부터 고액의 접대를 받는 케이스가 고개를 든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사회적 관심이 온통 한 쪽으로 쏠리면서 청탁방지법에 관한 관심이 크게 줄어 일각에서는 "김영란법은 물건너갔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이들은 ‘김영란법’으로 처벌받는 것을 피하기 위해 주로 증거가 남지 않는 현금을 활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업종 특성상 현금 사용을 꺼리는 금융권에서는 “내부의 눈총 때문에 접대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웃지 못할 하소연마저 나오는 실정이다.

모 대기업 대관 담당 직원 A씨는 “지난해말 한 국회의원과 그 보좌관 및 지인 등 10여명과 함께 와인바에 갔다”며 “그 자리에서만 고급 와인과 안주 등 약 800만원을 지출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곳은 시중에서 보기 힘든, 값비싼 술만 파는 고급 와인바”라면서 “바텐더들이 2차까지 나가는 경우도 종종 있으며,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부분까지 배려했다”고 귀띔했다.

“‘김영란법’으로 처벌받을 위험은 고려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A씨는 “국회의원 등 정무직 공무원은 여러 예외조항을 통해 ‘김영란법’을 얼마든지 회피할 수 있다”고 고개를 저었다. 이어 “리스크를 없애기 위해 전액 현금으로 결제했다”며 “일부러 현금영수증도 끊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대기업의 세무 담당 직원 B씨는 “최근 고위 공무원 두 명과 ‘접대 골프’를 쳤다”고 말했다.

그는 “일부러 우리 쪽에서 차를 준비한 뒤 이동 중 차 안에서 현금 100만원씩 줬다”며 “공무원들이 그 돈으로 골프 비용을 4분의 1씩 지불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밖에 내기의 형식을 빌려 골프 도중 100만원 상당의 상품권을 주고, 골프 후 ‘뒷풀이’로 고급 식당과 룸살롱 등에 가 현금으로 결재했다”고 덧붙였다.

B씨는 “접대에 필요한 비용은 회사에서 업무추진비 등으로 지급하고, 현금영수증이 없어도 감사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그는 “다른 회사들 역시 마찬가지로 하는 데다 접대를 받는 사람도 원하기에 어쩔 수 없는 면이 있다”고 변명했다. 

국내 유수의 대기업에 근무하는 C씨도 “지난해말과 올해초에 걸쳐 정무직 및 고위 공무원 여러 명을 융숭하게 접대하고, 대금은 현금으로 계산했다”고 말했다. 그는 “단골 가게일 경우 법인카드로 일단 소액만 결제한 뒤 나중에 회식 자리 등에서 과거 미결제 금액까지 한꺼번에 결제하는 수법을 쓰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C씨는 “사실 ‘김영란법’은 하위직 공무원, 기자, 교사 등 권력이 없는 사람들만 규제받는 법”이라며 “정무직 및 고위 공무원 등 소위 ‘힘 센 사람들’에게는 거의 영향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박영수 특검’의 조사 대상이 된 사람들도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지 않았으면, 유야무야 넘어갔을 것 아니냐”고 반문하면서 “원래 고위직은 수백만원 혹은 수천만원 수준의 접대로는 처벌받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증거가 남지 않는 현금을 활용한 ‘고액 접대’가 여전히 정치권과 관가에서 일어나고 있다. 접대를 하는 대기업 등에서는 “예전부터 하던 일”이라며 크게 개의치 않는 표정이다.

때문에 “‘김영란법’은 이미 사문화됐다”라는 평가와 더불어 “하위직 공무원이라도 규제받으니 존재 의의가 있다”는 반론도 나온다.

‘김영란법’ 시행 후에도 ‘고액 접대’가 사라지지 않다보니 금융권에서는 “접대를 못해서 정무직 및 고위 공무원 상대가 힘들다”는 황당한 하소연까지 흘러나온다.

대형 금융사의 대관 담당 직원 D씨는 “금융사들은 ‘고객의 돈’을 다루는 입장이라 매사 투명한 회계처리를 우선한다”며 “주위 눈총 때문에 현금으로 접대하기는 힘들다”고 고개를 저었다.

또 다른 대형 금융사의 세무 담당 직원 E씨는 “접대를 하긴 해야 하는데, 현금은 눈치가 보여 괴롭다”며 “지난번에는 할 수 없이 개인카드로 계산했다”고 말했다.  

안재성 기자 seilen7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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