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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년 영국 보수당에서 보수의 길을 보다

입력 : 2017-01-13 22:00:15 수정 : 2017-01-13 22: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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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시작된 영국병 고친 대처주의
“너무 잔인하고 엉성” 비난 쏟아졌지만
결국 시장 스스로 작동 메커니즘 구축
“보수주의는 무조건 변화에 반대하거나 저항하지 않는다. 변화를 거부하는 것은 정체되고 화석화된 사회를 낳을 뿐이다. 오히려 혁명이라는 과격한 변화를 사전 예방하기 위해 사회제도의 개혁이 때때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조심스럽고 숙고된 개혁을 건강한 사회의 필수적 요소로 받아들인다. 변화가 자신들의 손에서 안전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훨씬 낫다는 입장을 취해 왔다.”

서울대 서양사학과 박지향 교수는 신간 ‘정당의 생명력’을 펴내면서 보수주의의 본래 의미를 거듭 일깨우고 있다. 보수주의란 낡고 수구적인 태도의 대명사로 잘못 이해되는 최근 한국적 세태를 제대로 지적한 역작이다. 저자는 영국 보수당의 사례를 들면서 보수 정당의 생명력을 풀이했다.

박 교수는 우선 마거릿 대처(1925∼2013) 전 영국 총리의 사례를 든다. 21세기 초엽 대처주의는 거센 비난에 직면했다. 신자유주의의 뿌리였다는 것이다. 실제 대처의 정책으로 감원과 근로자의 급여 삭감으로 사회적 비용이 늘었다. 국가가 적자를 감수하고 제공하던 서비스가 사라져 버리는 등 사회적 정의도 실종됐다는 비판이 거셌다. 모두가 자유경쟁 또는 적자생존의 시장에 내던져졌다. 이로 인해 개인의 자유에 위기를 초래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심지어 대처가 택한 정책이 너무 잔인하고 엉성하며, 마치 19세기 맨체스터학파의 자유주의와 비슷하게 단순하다고 비난받았다. 


19세기 초엽 ‘하나의 국민’이란 이름 아래 뭉친 정파가 영국 보수당의 시초이다. 보수정당을 처음으로 시작한 벤저민 디즈레일리와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윈스턴 처칠, 60∼70년대 영국병을 치유한 마거릿 대처 전 총리(왼쪽부터).
서울대출판문화원 제공
그러나 대처를 반대한 사람들도 대처주의가 1970년대 말의 조합주의와 관료주의적 난국을 헤쳐 나가는 데 필요했다고 인정했다. 박 교수는 “흔히 영국병을 초래한 1960∼70년대 강성 노조와 제멋대로 파업이 횡행하던 시절 대처는 정치의 경제적 통제와 간섭, 명령을 제거해야 영국 경제가 살아난다고 호소했다”면서 “실제 대처의 바람대로 시장이 건전하게 스스로 작동하는 메커니즘 구축 이후 영국 경제는 살아났다”고 소개했다.

박 교수는 200년 가까이 지속한 영국 보수당이야말로 보수적 가치를 구현하는 정당이라고 설명했다.

“보수당은 1830년대부터 ‘보존하기 위해 변화할 필요성’을 알고 있었다. 1830년대 로버트 필이 보수당을 당명으로 채택했을 때 필 역시 개혁이야말로 보수를 위한 유일하게 신뢰할 수 있는 방식이라고 했다. 물론 보수주의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연속성과 변화는 양립 불가능하다고 애써 주장하지만, 보수주의자들이 변화를 배제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반드시 기억되어야 한다.”

예컨대 지난해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텍시트)는 좋은 사례라고 박 교수는 소개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주권 문제, 즉 EU 집행부에 대한 불신이다. 일반 대중에게는 이민 문제(일자리 등 사회문제)가 가장 피부에 와 닿는 불만이었다. 하지만 보수당의 일부 의원들조차 탈퇴를 지지한 것은 영국이 EU라는 거대한 초국가적 조직에 휘둘리고 있다는 불만 때문이다. 영국은 대의민주주의주의가 가장 먼저 태동한 나라다. 자신을 통치하고 명령을 내릴 사람은 자신이 투표로 선출하여 권리를 위임하고 권위를 인정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영국인은 갖고 있다. 그러나 EU 정책을 결정하는 집행위원회(Commission)는 선거에 의해 선출된 사람들이 아니다. 각국 정부가 임명한 사람들이다. 주로 고위관리 출신이다. 유럽의회라는 조직이 있지만 유명무실하다. 선거를 거치지도 않은 ‘비민주적’ 집행위원회가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며 EU에 속한 28개국 국민들의 삶을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았다.”

박 교수는 그러면서 “당시 캐머런 총리의 주장은 재능과 노력과 모험정신이 보상받는 체제”라고 소개했다. 실제 캐머런은 당 지도자가 되면서 보수주의와 사회주의 두 세력을 결합하려고 노력했다. 두 분파의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도덕적, 사회적 보수주의에 대한 지지를 들 수 있다. 보수주의는 사회주의와 달리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지만 그것이 전통적인 도덕으로부터의 일탈과 전통적 권위에 대한 도전이라면 용인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저자는 “영국의 뉴라이트 보수주의가 특별히 비판한 것은 ‘관대한 1960년대’가 낳은 사회적 기강의 해이, 데모, 문화파괴(vandalism)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는’ 문화”라고 지적했다. 저자는 “뉴라이트는 권위가 땅에 떨어지고 전통적 도덕률이 와해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 가족의 가치와 가부장적 질서를 회복하고, 학교의 기율과 권위를 회복하고, 국민이 선택한 정부의 권위에 도전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소개했다.

박 교수는 지난 12일 세계일보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보수 정당에는 원칙이 있다. 보수적 가치를 현실정치에서 구현하려는 게 정치다. 패거리 정파를 만드는 게 아니다. 영국 보수당은 원칙을 만들어냈고 유권자들에게 호소해 성공했다”면서 “우리는 그런 잣대가 무너졌다. 시장경제의 건전한 정립, 도덕적 엄격한 사회 질서라는 개념의 뉴라이트 역시 잘못 인식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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