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계 한한령 징후는 지난해 여름부터 시작됐다. 지난해 수지, 김우빈의 중국 팬미팅이 행사 이틀 전 취소됐고, 그룹 엑소와 빅뱅의 콘서트가 연기되는 등 한류 스타들의 중국 공연과 팬미팅 대부분이 취소됐다. 중화권 스타까지 출연한 한중합작영화의 중국 개봉이 불발됐으며, 유인나는 절반 이상 촬영한 드라마에서 하차를 통보받았다. 송중기 등 한류 스타들을 모델로 쓰던 기업들은 중국 연예인으로 바꾸고 있다. 싸이 등은 예능프로그램에서 모자이크 처리 및 통편집되거나 프로그램에서 퇴출됐다.
중국 문화부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지난해 10∼11월 두 달간 중국 공연을 승인받은 한류 스타는 단 한 명도 없다. 지난 7월에 2개, 8월 4개, 9월 3개의 한류 스타 공연이 승인받아 간간이 명맥을 이어왔지만 이후 그 맥이 끊긴 것이다.
‘한한령’(限韓令) 영향으로 드라마 등 한류문화콘텐츠의 중국 진출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
드라마 ‘사임당’. |
당장 영화계 피해가 심각해지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한국영화 해외통계에 따르면 중국에서 개봉한 한국 영화는 지난해 9월 ‘암살’ 이후 단 한 편도 없다. 연예계도 한한령의 직격탄을 맞았다. 한국은행 국제수지 통계에 따르면 TV, 영화, 음악 사용에 대한 해외 로열티 등을 의미하는 ‘음향·영상 관련 지식재산권의 복제 및 배포권 사용료’ 수입이 지난해 8월 이후 11월까지 넉 달째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영화 ‘수상한 그녀’. |
실제 ‘푸른 바다의 전설’은 중국에 정식 수출이 되지 못했는데도 중국 영화·TV 프로그램 사이트 ‘천심영시’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천심영시’는 합법이든 불법이든 단지 동영상 링크를 모은 포털사이트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중국 내 ‘푸른 바다의 전설’ 인기는 해적판이 유통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드라마 ‘푸른 바다의 전설’ |
전문가들과 업계 관계자들은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킬러콘텐츠’를 제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고정민 홍익대 문화예술경영대학원 교수는 “한한령은 문화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외교문제와 관련돼 있어 근본적으로 국가적인 차원에서 해결해야 한다”며 “중국 환경도 주시하면서 베트남, 태국 등 동남아시아와 인도 등 미래시장을 개척하는 장기적인 방안을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각 국에 맞는 창의적이면서 차별화된 킬러콘텐츠를 개발해야 한다”며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 주변나라에 수출하면 중국 시장도 개방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CJ E&M 관계자는 “우리나라에서 성공한 콘텐츠를 단순히 외국으로 수출했던 과거와 달리 현재는 아이디어, 기획 등을 현지 사정에 맞게 바꿔 판매하는 방식의 수출이 늘고 있다”며 “영화 ‘수상한 그녀’가 7개국에 각 나라의 특성에 맞게 변경돼 팔린 것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밝혔다.
‘수상한 그녀’는 20대 처녀의 몸으로 돌아간 70대 할머니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로 중국, 베트남, 일본, 태국, 인도네시아, 미국, 스페인 등 7개국 현지제작사와 함께 각 나라의 문화적 특성에 맞게 스토리가 일부 변경돼 각기 다른 제목으로 개봉됐다.
이복진 기자 b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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