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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출간된 책 ‘세상의 모든 소린이에게’의 내용 중 일부이다. 입양으로 새 가족을 이루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이 책에는 다양한 형태의 입양에 대한 내용과 적응 체험기 등이 담겼다.
위에서 소개한 내용은 ‘입양 전 위탁’에 관한 대목이다. 법원에서 입양 판결이 떨어지기 전에 입양을 전제로 미리 아이를 가정에 데려가 키우는 것을 뜻한다.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빨리 온전한 가정에서 사랑받도록 하고 싶은 예비 부모의 간절한 마음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입양 전 위탁은 엄연한 위법행위이다. 입양아의 인권을 중시하는 세계적 추세에 따라 개정된 입양특례법은 ‘입양기관 또는 부모는 법원의 입양허가 결정 후 입양될 아동을 양친이 될 사람에게 인도한다’고 규정했기 때문이다. 입양아 인계는 보건복지부 등 관계 기관과 법원을 통해 입양하는 가정의 요건과 예비부모로서의 자격 등이 충분히 검증된 뒤에 실시하도록 한 것이다. 입양절차의 편의성보다 입양 아동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제대로 검증된 입양을 지향하자는 취지다.
입양 전 위탁을 책에 쓴 양부모 역시 ‘한 인간의 삶이란 간단하게 결정지을 수 없는, 아주 엄중하게 다뤄야 할 성질의 것’이라며 ‘입양 심사가 까다롭고 복잡해진 것은 다행스러운 일일 수도 있다’며 제대로 된 절차 진행의 중요성에 대해 인정하고 있다.
입양 전 위탁은 입양기관이나 양부모의 입장에 편중된 국내 입양의 현실을 보여준다. 경기 동탄과 대구의 가정에 두 차례 입양됐다가 뇌사 판정을 받고 사망한 ‘은비(가명) 사건’은 입양 전 위탁과 관련한 대표적인 폐해다.
은비의 두 차례 입양은 모두 법원에서 입양 허가 판결을 내리기 전 양부모가 입양을 전제로 미리 데려간 것이다. 은비의 입양을 놓고 ‘가정위탁’이라거나 ‘사전입양’, ‘입양’ 등 다양한 용어가 뒤섞인 이유이다.
양부모 입장에서는 “아이를 빨리 보고 싶어서”, “조금이라도 더 사랑을 나눠주고 싶어서”라고 강변할 수 있지만 아이가 마음에 안 들 경우 되돌려 보내도 기록이 남지 않아 별 부담이 없다. 반면 입양 전 위탁이 취소된 아이는 파양당했다는 상처와 기록이 평생을 따라다닌다.
이에 대해 인권단체와 입양인단체들이 입양 전 위탁에 대해 ‘아동 쇼핑을 조장할 우려가 있다’며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사전 절차부터 사후 과정까지 관리·감독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것에 대한 우려가 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법적 근거가 없는 입양 전 위탁은 어떻게 뿌리를 내렸을까. 16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입양 전 위탁은 2013년 516명, 2014년 388명, 2015년 376명 등 해마다 수백명에 달한다.
보건복지부 관계자에게 입양 전 위탁에 대해 질의하자 “요보호 아동이 시설보다 가정에서 생활하는 게 이상적이기 때문에 시행하고 있다”며 “가정법원에서도 권장하고 있는 사항”이라고 답변했다.
이에 대해 서울가정법원 관계자는 “순기능으로 작용할 수 있는 부분이 있고 양부모단체 쪽의 요구가 커 일부 사례에 대해 묵인한 것은 사실이지만 권장사항으로 내세운 적은 절대 없다”고 반박했다. 입양 전 위탁은 정부의 요보호아동 체계가 제대로 관리되지 않음을 방증한다. 실제 중앙가정위탁지원센터를 통한 정부의 가정위탁 외에도 입양기관이나 법인 등이 사업 차원으로 진행하는 민간 가정위탁, 입양 전 위탁으로 나눠져 있다.
이는 전쟁고아가 엄청 많아진 6·25 직후 외국 선교사들을 중심으로 민간부문에서 아동복지사업에 뛰어든 것과 무관치 않다. 아동 입양에 관한 한 민간 부문이 전문성을 갖고 주도하는 데다 복지부 등 관련 공공기관은 순환보직 등으로 전문성과 사업 지속성을 담보하기가 어려워 양 측의 손발이 제대로 안 맞는 측면이 크다. 입양인의 인권 확대를 위해 활동하는 ‘뿌리의집’ 김도현 원장은 “정부 차원에서 가정 위탁의 상황을 면밀히 파악하고 관리·감독이 부실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준영 기자 papeniqu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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