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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궁갤러리] 말법시대, 스스로가 불상이 되고 싶은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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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1-17 21:43:08 수정 : 2017-01-17 21:4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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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기모토 히로시 ‘부처의 바다’ 일본 교토의 산주산겐도(三十三間堂)는 1266년에 재건된 천태종 사찰이다. 이름 그대로 본당이 33칸으로 이뤄진 건축물로 우리나라 종묘를 연상시킨다. 안에는 본존불을 중심으로 좌우로 500구씩의 관음상이 도열해 있다. 본존불을 합쳐 모두 1001구의 관음상이 장관을 이룬다.

일본 현대미술의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한 사람이자 현대사진의 거장으로 평가되는 스기모토 히로시(1948~ )의 시선도 1001구의 관음보살상에 머물렀다. 말법의 세상에 서방정토가 출현한다는 말법재래(末法再來)의 염원을 사진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작업은 근대초기등에 덧붙여진 모든 장식들을 제거하고 형광등 조명을 끈 상태에서 이뤄졌다. 1001구의 불상군은 서쪽에 위치해 동쪽 히가시야마 언덕 위로 솟은 아침 햇살을 받는다. 처마를 스친 빛이 어두운 본당 내부를 감싸는 형국이다. 어둠 속에 잠겨 있던 1001구의 불상이 눈부신 금박의 빛을 드러내면 장엄 속에 서방정토가 현현하는 듯하다. 아침 해가 떠오르는 순간 1001구의 불상과 같은 수의 중생이 함께 법열의 순간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111.9×149.2㎝, 개인소장)
결과는 상상을 넘는 아름다움이었다. 촬영 허가에만 7년이 걸린 보람이 있었다. 헤이안시대(794∼1185) 교토의 귀족들이 보았을 장면이다. 놀랍게도 정토가 출현하는 법열의 시간은 호마(護摩 · 불속에 물건을 던져 넣어 공양하고 기원하는 일)의 연기도, 독경의 울림도 없는 완전무결한 무의 상태였던 것이다.

“넓은 법당 안에서 1001구의 빛나는 불상에 둘러싸여 혼자 서 있을 때, 나는 내영도(來迎圖 ·임종 때 극락서방정토에서 맞이하러 오는 장면의 그림) 속에 홀로 서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리고 죽음이란 이렇게 찾아오는 것이라고 느꼈다. 찬란하게 내리쬐던 햇살도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순식간에 불당의 처마를 넘어갔다. 그렇게 빛나던 불상은 그늘 속에 잠겼다. 잠시 후 스님이 들어와 형광등을 켰다. 나는 현대라는 불가해한 말법의 세상에 돌아왔다.”

그는 하나의 불상을 만드는 심정으로 작업을 한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불법과 같은 진리를 깨달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신앙이 거의 사라지고 있는 세상에서 시대착오적인 수렁일 수도 있다. 허나 그는 그 속에서 불상이 된 자신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이 시대의 또 다른 개념미술을 보는 듯하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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