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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시, ‘동아시아 실크로드와 당성’ 국제학술대회 개최

입력 : 2017-01-21 03:00:00 수정 : 2017-01-20 10:3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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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성의 역사적 가치 재조명…포구 복원 심화 방안 모색 “신라의 해문 당성을 통한 서역·이슬람과의 교류는 전과 다른 새로운 세계와 문화를 접했다는 점에서 이는 신라시대의 문화를 더욱 풍성하게 하는 요소가 됐다.”

경기도 화성시와 신라사학회가 지난 13일 서울 방이동 한성백제박물관에서 개최한 ‘동아시아 실크로드와 당성’이라는 주제의 국제학술대회에서 발표한 계명대 노중국 교수의 주장이다.

‘신라의 해문 당성과 실크로드’를 주제로 발표에 나선 노 교수는 “6세기 중엽 이후 신라는 경기도 일대를 차지하면서 중국과의 교섭과 교류가 활발히 이뤄졌다”며 “이 시기 대중국 교섭에서 해문 역할을 한 곳이 당성이다”고 밝혔다.
주제 발표에 나선 계명대 노중국 교수.
그는 “외국의 사신이 왔을 때 일정한 절차를 밟는 곳을 육로는 관문, 해로는 해문이라고 한다”며 “당성은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삼국을 통일할 때까지는 물론, 통일 이후에도 가장 핵심적인 대당교통로의 역할을 했다”고 강조했다.

노 교수에 따르면 당성은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에 있는 삼국시대의 성곽으로, 1971년 4월15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217호로 지정됐다. 또 당성은 삼국 시대에 축성된 대규모 산성으로 둘레 약 1200m, 높이 3m 규모로 백제 시대에 축조됐다.

당성이 있는 남양 지역은 지금의 화성시로 신라 경덕왕 때는 당은군으로서 중국과의 중요한 교통로 구실을 했다. 또 신라 후기에는 이곳에 당성진을 설치, 청해진과 함께 신라 해군의 중요한 근거지였던 곳이다.

그는 “신라는 당나라 말기까지 당과 교섭과 교류를 했다”며 “이 과정에서 신라는 서역과 이슬람 세계 및 인도와 접촉하기도 하고 이 지역 사람들과 물품들이 신라로 들어오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노 교수는 “특히 아라비아인은 주로 당나라의 동남 해안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었다”며 “이들은 이슬람 무슬림으로서 당 내지에 번방을 이루고 살았는데, 회교 사원인 모스크를 건립하고 자신들의 공동묘지도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데 845년에 당 무종은 불교 탄압 정책을 단행했고, 이 과정에서 불교뿐 아니라 이슬람교, 경교 등 외래 종교도 탄압을 받았다”며 “이렇게 되자 당나라에 모여 살던 아라비아인들 가운데 일부는 신라로까지 진출해 활로를 모색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신라로 들어온 아라비아인의 활동상을 보여주는 사례로는 헌강왕대의 처용을 들 수 있다. 노 교수는 “처용의 실체에 대해서는 울산 지역 호족의 자제, 이슬람 상인, 헌강왕의 서자라는 등 여러 가지 견해가 있지만 처용탈이 보여주는 것에서 보듯이 이슬람 출신자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또 “그가 처용가를 불러 역신을 물리쳤다는 것과 그의 얼굴을 그려 대문에 붙인 집에는 역신이 들어가지 않겠다고 한 역신의 약속에서 미뤄 처용은 이슬람의 의술을 가진 존재로 볼 수 있다”며 “원성왕릉과 흥덕왕릉 앞에 세워진 심목고비의 무인상이 이슬람인의 모습이라는 것도 신라에서 이슬람인의 활동상을 짐작하게 한다”고 말했다.

덧붙여 “이렇게 이슬람인들과 이슬람 문화가 신라에 들어오면서 신라도 이슬람 세계에 알려지게 됐다”며 “9세기 중엽에 쓰인 ‘제도로 및 제왕국 안내서’에는 ‘중국의 동쪽 깐수의 맞은편에 신라라는 나라가 있다’, ‘신라로 진출한 무슬림들은 자연환경의 쾌적함 때문에 영구 정착해 떠날 줄을 모른다’는 등의 내용을 전한다”고 소개했다.

노 교수는 “아라비아인을 비롯해 페르시아인, 소그드인까지 들어오면서 신라는 전과 다른 새로운 세계와 문화를 접하게 돼, 문화적으로 풍성해지는 계기가 됐다”며 “나아가 이 시기에 신라도 동서양의 문화교류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

또한 “모든 교섭의 해문은 당성이었기에 수도 경주로 들어오고, 경주로부터 나가는 사람들과 물건들은 일차적으로 당성을 경유해야 했다”며 “이렇게 볼 때 동서양 문화교류에서 당성은 왕도 경주에 다음 가는 중요한 위치를 점했다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부산외국어대 권덕영 교수는 ‘당성 당은포를 통한 나당간 인적 왕래’라는 주제의 발표에서 “당성 당은포는 삼국시대부터 줄곧 신라의 대중국 출입항으로 이용됐다”며 “그에 따라 당은포는 신라와 당이 교섭하던 약 3세기 동안 수많은 사람과 물품이 드나드는 통로였고, 양국 문화교류의 창구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당간 인적왕래의 통로이자 출입관문이 바로 당은포였다는 점에서 당성 당은포는 나당교섭사를 포함한 한국고대사의 전개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강조했다.

이밖에 중국 섬서역사박물관 양근 관장이 ‘당 장회태자묘 객사도 대조우관사자적매개문제’, 중국 섬서사범대학 사무전 교수가 ‘도상기억-돈황석굴 조선반도 인물형상천석’, 국사편찬위원회 박남수 편사연구관이 ‘신라의 동서문화 교류와 당성’을 주제로 각각 발표했다.
‘동아시아 실크로드와 당성’ 국제학술대회 전경.
종합토론에선 숙명여대 정병삼 교수가 좌장을 맡았으며, 전주교육대 김주성 교수, 한성백제박물관 김기섭 전시기획과장, 국립문화재연구소 박대남 학예연구관,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곽뢰 연구원, 동국대학교 장일규 교수 등이 패널로 참가했다.

토론자들은 당성과 함께 당은포에 대한 연구 필요성을 제기했으며, 이에 화성시는 지난 2015년 진행된 기존 조사를 바탕으로 포구 복원 연구를 심화할 계획이다.

이번 학술대회는 삼국시대 빈번한 쟁탈전이 벌어졌던 곳으로, 국제 무역항이기도 한 경기도 화성의 당성이 동아시아 실크로드에 끼친 위상을 종합적으로 고찰하고, 역사적 가치를 재조명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김현태 기자 jknewsk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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