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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재현

정오 무렵이나 오후 두 시쯤이나
하여간 좀 덜 부끄러운 시간에
옛날에 우리 학교 다닐 때처럼
일제히 사이렌이 울리고
걸어가던 사람이, 아직 누워 있던 사람이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방공호 같은 데, 혹은 그늘 밑, 담장 밑,
다리 밑, 공중화장실 뒤
하여간 좀 덜 부끄러운 곳에
모여서 숨어서
법적으로 의무적으로
한 십 분쯤 우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고 나면 다시 걸어도
다시 누워도 오후 서너 시가 되어도
이 땅에서 어른으로 사는 게
좀 덜 부끄러워도 지는

-신작시집 ‘우는 시간’(애지)에서

◆ 피재현 시인 약력

△1967년 경북 안동 출생 △1999년 계간 ‘사람의문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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