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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취재] "사회가 함께 키워요"…시각장애인 동반자 안내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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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1-22 14:08:47 수정 : 2017-01-22 14: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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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서운 한파가 몰아친 지난 12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지하철 수내역 인근 육교에서는 ‘시각장애인 안내견’이라고 쓰인 노란 조끼를 입은 래브라도 리트리버 세 마리가 훈련에 한창이었다. 각각 길벗, 도담, 마루란 이름을 가진 ‘삼성화재 안내견학교’ 후보견인 이들은 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훈련사들과 함께 계단을 오르내리고 횡단보도를 건너며 1시간 동안 다양한 길에 적응하는 훈련을 받았다. 훈련사가 시각장애인이라고 가정하고 서로 교감하며 이뤄지는 과정이었다.

지난 12일 경기 성남시 지하철 수내역 인근 육교에서 삼성화재 안내견학교 훈련사들이 파이팅을 외치며 안내견 후보견들과 함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홍아름 훈련사와 도담, 신규돌 훈련사와 마루, 이진용 훈련사와 길벗. 성남=남정탁 기자
◆안내견 훈련 핵심은 ‘교감과 칭찬’

“우리도 후보견들도 훈련 과정을 ‘놀이’로 생각합니다.”

21년차 베테랑인 신규돌(47) 훈련사는 후보견들이 받는 훈련이 단순한 교육이 아닌 놀이라고 강조했다. 직선으로 보행하고 계단이 나타나면 멈춰서는 등 기본을 익히는 것은 물론, 시각장애인과 어떻게 호흡을 맞춰야 하는지가 중요하다는 의미다.

신 훈련사는 마루에게 “그렇지”, “잘했어”와 같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때마다 마루는 검고 큰 눈망울로 신 훈련사를 쳐다보고 꼬리를 마구 흔들며 기쁨을 표현했다.

이는 바로 부정적인 언어보다 긍정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긍정 강화 훈련’이다. 훈련사들은 이 같은 방식이 후보견들이 스스로 학습하게 한다고 설명한다.

신 훈련사는 “잘한 행동을 했을 때 칭찬하고 간식을 주면 후보견들 스스로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판단한다”며 “칭찬으로 성장하는 후보견들을 보면 보람이 크다”고 말했다.

칭찬 못지않게 교감도 훈련의 중요한 요소다. 삼성화재 안내견학교의 훈련사 총 3명이 맡고 있는 후보견은 각 6마리. 훈련사는 주중에 매일 한 시간씩 진행되는 훈련 외에도 후보견들의 식사, 목욕 등을 챙기며 진정한 교감을 나눈다.

훈련사들은 이 과정을 거쳐 파악한 후보견들의 특징을 바탕으로 개별적인 훈련 과정을 만든다. 학습의 속도나 성격, 좋아하는 것이 많이 달라 맞춤형 훈련을 실시하는 것. 실제로 이날 길벗과 도담, 마루는 10~20분간 같이 훈련한 뒤 맞춤형 훈련을 소화하기 위해 뿔뿔이 흩어졌다.

삼성화재가 용인 에버랜드에 위탁해 운영 중인 이 학교의 안내견은 모두 ‘래브라도 리트리버’다. 안내견은 말을 잘 들으며 사람을 좋아하면서도 위탁되기에 충성심이 너무 강하면 안 되는데, 이 같은 조건에 래브라도 리트리버가 가장 적합하기 때문. 래브라도 리트리버가 전 세계 안내견의 90%를 차지하는 이유다.

지난 12일 경기 성남시 지하철 수내역 인근 육교에서 삼성화재 안내견학교 훈련사와 안내견 후보견들이 육교의 계단을 오르내리고 있다.
성남=남정탁 기자
◆안내견 사회화 8할은 자원봉사자들 손에서

삼성화재 안내견학교 관계자는 “1993년 문을 연 이래 어떻게 하면 재미있고 효과적으로 훈련할 수 있을지 항상 고민한다”며 “학교가 20여년간 이어져 올 수 있었던 것은 자원봉사자들 덕분”이라고 말했다.

후보견이 학교에서 지내며 훈련하는 기간은 6~8개월 정도다. 이에 앞서 예비 후보견은 태어난 지 두 달이 채 되기 전, 위탁 가정에 1년간 맡겨지는 ‘퍼피워킹(Puppy Walking)’을 거친다.

퍼피워킹은 일종의 사회화 과정이다. 퍼피워킹에 참여하는 ‘퍼피워커’는 예비 후보견이 초인종 소리에 크게 반응하지 않고 대소변을 가리는 것 등을 가르치고 백화점과 지하철을 비롯한 다양한 장소에 익숙해지도록 돕는다.

누구나 신청할 수 있지만 조건은 있다. 집에 돌봐줄 사람이 항상 있어야 하고, 미취학 아동이나 2마리 이상의 애완견이 있으면 안 된다. 총 43마리가 퍼피워킹 중이며, 퍼피워커 대기자가 20명에 달할 정도로 인기다.

신규돌 훈련사는 “개의 평균 수명은 보통 15년인데, 안내견은 이보다 14개월 정도 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이는 안내견이 사람과 끊임없이 교감하며 사회화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안내견학교를 찾는 자원봉사자들도 큰 힘이다. 후보견들은 훈련이 없는 주말만큼은 다른 반려동물처럼 자원봉사자들과 뛰어놀면서 휴식을 취한다.

은퇴한 안내견이 여생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게 돕는 자원봉사자도 적지 않다. 안내견학교 관계자는 “자신이 돌본 안내견이 은퇴할 때를 기다리는 퍼피워커들이 꽤 있다”고 전했다.

안내견 훈련사들은 “시각장애인들의 안전한 보행과 자활을 돕는 안내견은 사회가 함께 키우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안내견이 짖지 않는 건 성대 수술 때문’이란 식의 불필요한 오해를 갖지 말아달라는 당부다.

그간 안내견 193마리를 배출, 시각장애인들에게 무상으로 기증한 삼성화재 안내견학교는 내년에 25돌을 맞는다. 현재 이 학교 출신인 안내견 59마리가 시각장애인 59명의 눈이 돼 주고 있다.

성남=김지현 기자 becreative07@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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