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인터뷰] 비정상적인 세상에 대한 분노… 무대서 쏟아내다

입력 : 2017-01-22 20:53:28 수정 : 2017-01-22 20:53:28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문화예술위원회 우수 창작연극 지원사업 선정 연출가 2인 멀고 번거롭다. 지갑도 따로 열어야 한다. 늘 감동에 젖어 돌아오는 것도 아니다. 연극은 약점투성이인 장르다. TV가 놓인 거실의 아늑함, 스마트폰의 간편함을 뿌리치고 연극 공연장을 찾아야 하는 이유가 무얼까. 대학로에 탄탄히 자리한 두 극단의 고민도 같았다. 공상집단 뚱딴지의 문삼화(50) 연출과 공연배달서비스 간다의 민준호(40) 연출은 ‘왜 연극이어야 하나’를 동력 삼아 매번 변화와 도전에 나선다. 문화예술위원회 우수 창작연극 지원사업에 함께 선정된 이들을 최근 대학로에서 만났다. 각각 데뷔 14, 13년차인 두 연출가는 ‘연극의 차별성’에 대한 고민을 공유했다.

대학로에서 극단 공상집단뚱딴지를 꾸려온 문삼화(오른쪽) 연출과 공연배달서비스 간다의 민준호 연출은 “극단 대표라는 직함이 힘들긴 하다”며 “극단의 방향, 배우들의 미래까지 신경쓸 게 많은데 술도 항상 우리가 사야 한다”고 농반진반으로 푸념했다.
이재문 기자
“연극 연출가 공통의 화두예요. 사람들이 왜 돈을 내고 답답한 지하, 먼지 잔뜩 낀 공간에서 공연을 봐야 하느냐. 영상 매체를 어떻게 따라가요.”(문삼화)

“영상이 아닌 무대에서만 할 수 있는 공연을 하자. 그래서 늘 다양한 형식을 고민해 왔어요.”(민준호)

문 연출은 2003년 극단 유에 합류하며 연극계에 발을 들였다. 28살에 직장에서 뛰쳐나온 지 5년 만이었다. ‘뚱딴지’로 독립한 건 2009년이다. 문 연출은 “이름을 뭘로 할까 생각하니 바로 ‘뚱딴지’가 떠올랐다”며 “뚱딴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고 했다.

민 연출의 인생도 뚱딴지 같다. 그는 1996년 게임시나리오 작가가 되려 연극영화과에 진학했다. ‘학과 선배들이 시키는 거 열심히 하다 보니’ 연기를 하게 됐다. 본격적으로 연기를 배우려 1999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 입학했다. 연기를 하니 움직임에 관심이 많아져서 뉴욕에서 춤을 공부했다. 한예종 무용원에도 들어갔다. 졸업 즈음 친구들과 뮤지컬 ‘거울공주 평강이야기’를 만들었고, 아무도 연출을 안 하려 해 얼결에 연출까지 맡게 된 세월이 지금까지 흘러왔다. 여기저기 돌며 ‘거울공주…’를 공연하려니 사업자등록증이 필요해 2004년 ‘…간다’도 창단했다.

두 사람은 2005년 한예종에서 강사와 학생으로 처음 만났다. 밀양 여름공연예술축제 젊은연출가전에서도 연이어 상을 받았다. 문 연출은 2004년, 민 연출은 2005년 수상했다.

“전부터 ‘간다’를 봐왔는데 굉장히 다른 색·에너지로 움직여 놀랐어요. 끊임없이 쿵작쿵작, 부지런히 하는 것 같아요. 하고 싶은 말이 많다는 거겠죠. 어쩌면 분노할 게 많은지도 몰라요. 이게 창작의 핵심 동력이라고 생각해요. 연극에서는 ‘무슨 얘기를 하고 싶으냐’가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라이브라는 걸 빼면 연극이 영상매체를 넘어서는 점이 없어요. 그러니 더 치열하게 고민해야죠.”(문삼화)


‘뚱딴지’ 역시 지금의 한국사회를 얘기하는 극단이기를 꿈꾼다. 이번에 문예위 ‘창작산실 우수작품전’에서 선보일 작품에도 이런 고민이 반영됐다. 문 연출은 내달 10∼26일 동숭아트센터 동승홀에서 ‘소나기마차’를 올린다. 소나기만 맞으면 인체가 검게 썩어 흘러내리는 음울한 세기말이 배경이다. 유랑 극단 배우들이 마차에 의지해 마을에서 마을로 떠돌며 공연을 벌인다. 이들은 무대를 통해 희망을 주려 하지만 갈수록 절망과 파멸이 닥쳐온다. ‘간다’는 같은 기간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신인류의 백분토론’을 올린다. 전문가들이 나와 진화론 대 창조론, 마음과 정신의 기원에 대해 난장토론을 벌인다.

“‘우리 모두 천하의 개잡x들이다, 다들 굴절되고 왜곡돼 있다’고 이 작품을 해석해서 연출했어요. 요새 시국이 x판이잖아요. 사실 권력자의 부패는 늘 존재해왔어요. 이게 인간의 민낯이자 추한 욕망이죠. 이를 까발리고 싶었어요. 요새 정치판과 비슷해요. 결국 다 자멸하는 거죠.”(문삼화)

“저희도 비슷해요. 토론회에서 지적·논리적으로 말한다고 대단한 진리를 얘기하는 게 아니에요. 가만히 보면, 그냥 싫을 뿐이에요. 정치 토론과 똑같아요. 그냥 싸우는 거죠. 인류가 반성할 때가 아닌가 생각돼 이 작품을 만들었어요. ‘뚱딴지’와 우리는 같은 생각을 다른 양식과 이야기로 만든 것 같아요.”(민준호)

“우리가 하고 싶은 얘기는 시대와 별도로 존재하지 않거든요. 지금의 한국이 우리로 하여금 이런 얘기를 하게 만든 것 같아요.”(문삼화)

‘지금 한국사회’라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연극인에게 정부 지원은 양날의 검과 비슷하다. 생존을 위해서는 필수지만, 정부 지원은 언제나 검열 가능성을 내포한다.

“정부 지원은 당연히 있어야 해요. 연극이 앞으로 더 위기에 몰릴 거예요. 하지만 연극은 인간과 인간을 연결해주는 문화로서 끝까지 남아있어야 해요. 모든 문화를 스마트폰으로 즐길 거냐고요. 공연예술의 중요성을 사회 전체가 인식해야 해요. 육체를 통해 전해지는 예술이 공존할 때 그 사회의 문화 수준이 달라진다고 봐요. 저희 역시 무대에서만 맛볼 수 있는 매력을 어떻게든 전달하는 게 의무죠.”(민준호)

“저희는 지난해 정부 검열에 항의하는 연극인들의 ‘권리장전’에 참여했어요. 그런데도 문예위 지원에 뽑혔죠. ‘블랙리스트’가 권력의 입맛대로 안 돌아간 이유는 심사위원이 별도로 있기 때문이에요. 제도적으로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면 돼요.”(문삼화)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제나 '깜찍하게'
  • 정은지 '해맑은 미소'
  • 에스파 카리나 '여신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