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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결혼에 관한 불편한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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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1-22 21:07:59 수정 : 2017-01-22 21: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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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럼 언제 결혼하고 아이는 언제 낳으려고 그러시나?” ‘아… 또 시작이구나.’

노트북을 사용하면서 이동해야 할 때가 많아 하루 한 번 이상은 택시를 탄다. 그럴 때마다 마음의 준비를 한다. 두세 번에 한 번꼴로 같은 질문을 받기 때문이다. ‘직장인이세요’로 가볍게 시작한 질문은 한 단계씩 진화한다. 나이와 결혼 여부를 묻고 서른살이 지났음에도 미혼인 사실을 알면 통탄을 금치 못한다. “사람은 괜찮은데 그거 하나가 흠이네 흠이야∼”

물론 택시에 탄 손님을 친절하게 대하고자 한 악의없는 질문이었겠지만 그럴 때마다 ‘불쾌하다’는 느낌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나에게 우려를 보내는 건 택시기사들뿐만이 아니다. 취재원들 가운데서도 사심없는 인사말을 툭 던지는 경우가 있다. 몇 달 전 만났던 모업체의 대표는 첫 인사가 “아직도 시집 안 갔어요?”였다. 무심코 던진 그들의 질문에는 ‘여자는 30살 전에는 결혼하는 것이 정답’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었다. ‘그렇지 않을 땐 문제가 있다’는 식의 태도가 나를 불쾌하게 했다.

지난달 통계청이 발표한 ‘2016 일·가정 양립 지표’를 보면 여성의 평균 초혼 연령이 30대에 진입했다. 여자가 30대 넘어 결혼하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여성의 나이와 결혼 여부에 집착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여성에 대한 시각을 보여준다. 최근 논란이 됐던 ‘가임기 여성지도’도 같은 맥락이다. 전국 지자체별로 가임기 여성의 숫자를 줄세운 이 ‘출산 지도’는 여성을 임신과 출산을 위한 ‘도구’처럼 느끼도록 한다.

대학과 사회 생활을 남들보다 조금 늦게 시작한 나로서는 결혼보다 먼저 하고 싶은 일이 많다. 비혼주의자는 아니지만 “여자는 결혼하면 출산·육아로 커리어 쌓기가 힘든 것이 현실”이라는 지인들의 경험이 결혼을 두렵게 한다. ‘우리네 엄마’ 삶이 그랬다.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한 필자 어머니는 졸업하고 결혼하면서 나와 동생을 키우는 것만도 벅차 성악가의 꿈을 포기했다고 한다.

주위를 살펴보면 결혼하고 싶어도 못하는 경우도 많다. 한 초등학교 동창은 예비 신랑과 결혼에 대해 얘기하다 보면 감당해야 할 천문학적 액수에 둘 다 침울해진다고 했다. 지난해 15∼29세 청년 실업자는 100만명을 넘었다.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5억9670만원이다. 아이 하나를 성인이 될 때까지 양육하는 비용은 3억원 이상 든다. 평범한 직장인이 몇십년 일해도 모으기 힘든 돈이다. 

남혜정 국제부 기자
결혼·출산·육아는 개인 문제가 아니다. 치솟는 주거비와 일과 육아가 양립되지 않는 사회 제도·환경이 걸림돌이다. 그럼에도 이를 개인 신상 문제로 치부해 기자에게 채근하는 질문을 던질 때마다 장황하게 설명할 수 없어 입을 다물고 쓴웃음을 짓는다.

명절이 다가온다. 택시기사에게서나 취재원으로부터 받은 질문을 친척들 모인 자리에서 또 듣게 될까 두려워하는 ‘결혼 적령기’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이번 명절에는 속시원히 답할 수 없어 쓴웃음 짓게 만드는 질문이 그만 오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남혜정 국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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