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셋 못하는 삶 매순간 윤리적 실천을
저자는 태아기, 출생, 유년기, 사춘기, 청춘, 현실 경험, 성년, 한계 경험, 성숙, 끝맺음의 경험, 노년의 지혜, 그리고 고령으로의 진입, 노쇠함 등 인생의 시기들을 찬찬히 조망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각 시기는 그 자체로 고유한 형상을 이루고 각자에 고유한 의미를 지니고 있어서 다른 어떤 시기로도 대체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각 시기의 특성과 그 시기에 걸맞은 가치 추구의 지혜와 윤리가 필요하다. 삶 전체라는 조감도와 관련해 각 시기에 대한 저자의 성찰은 간명하되 심오하다. 특히 노년에 대한 이해가 인상적이다. 노년은 단지 소진된 삶의 순간이 아니다. 잉여가 아니다. 인생 전체를 총체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경험과 안목을 바탕으로 삶의 의미를 완성해나갈 수 있는 시기가 노년이다.
그러기에 죽음을 앞둔 노년이 모든 것을 허심탄회하게 받아들이고 영원한 것을 성찰하며 그 의미를 이해하고 실현하려 하는 게 중요하다. 아울러 노년이 아닌 다른 세대 사람들도 그런 노년의 특성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 노년이 의당 누려야 할 삶의 권리를 진솔하고 친절한 태도로 승인해주는 것이 다른 세대에도 도움이 된다. 가령 청년이나 성년은 노인을 돌보면서 인간 존재 자체의 취약성을 헤아리고, 건강한 활력으로 인해 보이지 않던 깊은 가치를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삶의 비극이나 고독, 인간 사이의 연대 문제 등에 대해서도 성찰의 지렛대를 마련할 수 있다.
한편 저자는 삶의 의미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모든 순간의 유일무이성에 대한 인식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모든 삶의 시기가 전례 없이 새롭고 유일하며 또한 영원히 사라져가는 것이라는 사실, 바로 이 점에서 인간 삶의 긴장, 즉 바로 그때 그 시기의 삶을 살려는 아주 내밀한 충동이 나옵니다. 이 충동을 느끼지 못하면 곧바로 단조로움의 감정이 생겨나고, 이 감정은 절망으로까지 치달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또한 그러한 유일무이함 때문에 지나간 어떤 것도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이 무겁게 다가옵니다.”
디지털 게임처럼 리셋 할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매 순간의 유일성에 대한 인식과 삶 전체와의 변증법적 상관성을 헤아리고 윤리적으로 실천한다면 완성된 삶에 가까이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설날 떡국을 먹으면서, 또 한 살의 나이를 먹는구나 생각하면서, 나잇값 못하고 해당 시기의 윤리를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현실 풍경과 아울러 나이를 둘러싼 우리 사회의 세대 갈등, 노년에 대한 폄훼 경향 등을 떠올리면서 다시 손에 쥐게 된 책이다. 우리 모두는 완성된 삶을 수행할 수 있는 소중한 존재들이다.
우찬제 서강대 교수·문학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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