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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반기문의 낙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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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2-03 00:44:35 수정 : 2017-02-03 00:4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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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대권가도서 낙마한 이유는 뭘까. 본인은 한국 정치의 저급성을 들지만 그건 사소하다. 정치를 두고 “진흙탕에서 연꽃을 피우는 종합예술”이라고 미화하는 사람도 있다. 마키아벨리의 통찰이 더 현실적이다. 지도자에겐 ‘사자의 용맹’과 ‘여우의 꾀’가 필요하다고 했다. 삼국지에서 조조는 냉혹하면서 꾀가 많았고 유비는 용맹한 동생들을 많이 두었기에 한 시대를 이끌었다.

천하를 다투려면 모든 것을 걸고 고루한 현실과 맞닥뜨려야 한다. 김영삼(YS)·김대중(DJ) 두 전 대통령은 민주화 투쟁 지도자들이고 노무현 전 대통령만 해도 노동현장에서 잔뼈가 굵었다. YS는 민주화를 외치면서도 군사정부와 야합을 하고 DJ는 이념적 적대세력과 연대도 서슴지 않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전 재산을 기부했고, 욕을 바가지로 먹는 박근혜 대통령은 “나라와 결혼했다”고 치장했다. 모두 국민의 마음을 훔치기 위해서다. 하다못해 모든 대선후보들은 선거가 얼마나 고통스러운 과정인지 온 몸으로 겪은 사람들이다. 몸을 불사르려면 인생을 걸어야 한다. 그러나 반 전 총장은 경쟁자들이 수도 없이 겪은 진흙탕을 20일간 잠깐 맛봤을 뿐이다.

10년 앞서 대권가도서 중도낙마한 고건 전 국무총리는 나중에 대권의 3대 조건을 말한 적이 있다. 대권에 도전하려면 천시(天時), 지리(地利), 인화(人和)를 갖춰야 한다는 훈수였다. 반 전 총장은 천시만큼은 타고났다고 볼 수 있다. 유엔 사무총장 스펙만으로 지지도가 고공비행한 게 그걸 입증한다. 하지만 지리와 인화에서 역부족이어서 판을 이끌지 못했다. 지리의 현대적 해석은 정치적 입지, 경쟁자 구도, 정국의 유불리 등으로 요약된다. 좋은 장수는 전쟁터 상황에 두루 통달해 병사들의 진퇴를 용이하게 해야 한다. 고전인 손자병법의 기준에서 보면 반 전 총장은 좋은 장수가 아니다.

반 전 총장은 용맹하지도 꾀가 많지도 않았다. 결연함도 없었다. 그래도 더 늦기 전에 손을 털고 짐을 싼 데서 현명함이 돋보인다. 반 전 총장은 좋은 장수는 아니지만 훌륭한 원로는 될 수 있다.

백영철 대기자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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