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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프로배구에도 철없던 ‘한석봉’에서 최고의 ‘세트 장인’으로 거듭난 선수가 있다. 전통의 명가 대한항공의 국가대표 세터 한선수(32)다. 한선수는 고교 때 힘든 숙소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갔지만 어머니 김봉선(62)씨가 “한 번 시작한 일은 끝까지 해내야 한다”며 매몰차게 돌려보낸 뒤로 운동에 매진했다고 한다. 한선수는 5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어머니가 중학교 때 까지 힘든 운동을 말렸기 때문에 당시 반응이 의외였다. 그때 어머니가 나를 혼내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운동을 이어갈 수 없었을 것”이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어머니의 애정 어린 채찍으로 한선수는 현존 남자 프로배구 최고의 세터가 됐다. 그는 지난 1일 구미 박정희체육관에서 열린 KB손해보험과의 2016∼2017 V-리그 경기에서 48개의 세트를 기록하며 프로 통산 241경기만에 역대 최소 경기로 1만 세트를 돌파했다. 세트는 세터가 공을 토스해 득점으로 연결되는 것을 말한다. 누적 세트 수 1위는 권영민(KB손해보험·1만2738개), 2위는 최태웅 현대캐피탈 감독(1만743개)이지만 3위 한선수의 나이가 많지 않아 이들의 기록도 곧 따라잡을 가능성이 높다. 한선수는 “기록을 의식하지 않는 편이라 1만 세트를 달성한 줄도 몰랐다. 정신없이 달리다 보니 대기록이 나온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세터로서 만능에 가까운 경기력은 한선수에게 최근 2년 연속 프로배구 ‘연봉 킹(5억원)’의 영광을 안겼다. 하얀 피부의 ‘꽃미남’ 외모로도 유명한 그는 올스타전의 단골손님으로 꼽힐 만큼 대중적 인기도 높다. 많은 연봉과 인기에 대한 부담이 없냐고 묻자 한선수는 “부담보다는 기분이 좋은 것이 먼저다. 경기에 나설 때마다 관중의 성원에 늘 보답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뛴다. 앞으로 40살까지 선수 생활을 하면서 팀에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돈과 명예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지만 그는 아직까지 이루지 못한 꿈이 있다. 한선수의 소속팀 대한항공은 매 시즌 우승 후보로 거론되지만 아직까지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일궈내지 못했다. 2010~2011시즌 정규리그 우승이 가장 좋은 성적이었다. 그러나 올 시즌은 어느 때보다 기세가 좋다. 5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OK저축은행과의 경기에서 대한항공은 세트 스코어 3-0(25-18 25-19 25-20) 완승을 거두고 V-리그 남자부 단독 선두(19승8패·승점56) 자리를 더욱 굳혔다. 이로써 대한항공은 정규리그가 9경기 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챔피언결정전 직행 티켓을 거머쥘 수 있는 가장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대한항공은 토종 주포 김학민과 용병 가스파리니, 붙박이 주전 세터 한선수를 앞세워 시즌이 진행될수록 더욱 끈끈한 조직력을 과시하고 있다. 타 포지션에 비해 리베로가 약점으로 꼽히지만 나머지 선수들이 똘똘 뭉치면서 위기를 극복해가고 있다. 한선수는 “당장 우승을 생각하지 않고 있다. 매 경기를 즐겁게 치르다 보면 좋은 결과가 따라올 것이다. 기대하지 않았던 우승이 더욱 기쁘게 다가올 것 같다”며 각오를 다졌다.
안병수 기자 r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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