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 워싱턴의 연방의회에서도 그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말들이 번지고 있다. 멕시코와 국경장벽 설치를 주장하는 행정명령 이행이 어려울 수 있다는 의견이 공화당에서도 표출되기 시작했다. 멕시코가 장벽 설치 비용을 낼 리 만무하고, 미 의회에서 천문학적인 예산을 승인하기도 어렵다고 밝히는 의원들이 늘고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동맹’ 호주와 ‘적국’ 이란에서도 충돌 가능성이 전해졌다. 호주와 이란은 모두 트럼프 정부에 버락 오바마 정부 시절 맺은 합의 이행을 요구하고 있다. 트럼프는 지난해 미국 정부가 호주와 맺은 난민 수용 합의 이행을 파기할 태세이고, 이란에 대해서는 각종 제재를 추가하며 ‘핵 합의’ 파기를 넘어서는 강공 드라이브를 예고했다.
트럼프는 백악관에 들어가자마자 거침없는 ‘마이웨이’를 자랑했지만 세련된 행보와는 거리가 멀었다. 전임자들보다 많이 남발한 행정명령 발동이 그의 조급증을 드러낸다. 행정명령은 소수당 출신 대통령이거나 의회의 동의를 구하기 어려울 때 발동되는 게 관행이었다. 여당인 공화당이 상·하원을 동시에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트럼프는 충분히 의회와 조율에 나설 수 있었다. 그는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행정명령 발동을 예고하고 여론의 반응을 보며 즐기기도 했다. ‘언론과의 전쟁’을 선포하다시피 하면서도 행정명령 서명 장면은 미디어에 흘렸다.
트럼프의 이런 질주를 바라보는 미국 여론은 복잡하다. 기자가 만난 하원의원 30년 경력의 댄 버튼 전 의원은 트럼프시대가 오바마정부나 그 이전보다 나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런 기대와 달리 극히 짧은 시간에 몰아치고 있는 극우·보수바람이 트럼프의 재선을 막고 미국을 옥죄는 소용돌이로 작용할 수도 있다. 그런 징조는 이미 감지되고 있다. 트럼프가 휴가를 떠나던 날 공개된 CNN방송·ORG 공동 여론조사에 그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호감 44%, 반감 53%’였다. 역대 최악 수준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부인 멜라니아 여사가 4일(현지시간) 플로리다 팜비치의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열린 적십자사 60주년 기념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팜비치=AFP연합뉴스 |
아시아와 유럽의 동맹을 대상으로 한 통상압박과 다국적기업을 향한 제조업 공장 이전 압박도 결국엔 부메랑이 될 수 있다. 겁박을 통해 공장을 잔뜩 불러들이거나 관세를 높였다가는 나중엔 오히려 미국 기업의 경쟁력 약화와 물가상승을 야기할 것이다.
트럼프의 모습엔 이문열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주인공 엄석대의 모습이 교차된다. 닫힌 사회에서도 강고한 1인자의 압박과 독주는 보장되지 않는 법이다. 현대사회는 열려도 너무 열린 사회다. 국제사회는 물론 그의 탄생을 지켜봤던 미국의 여론도 극히 짧은 시간에 그를 배척할 수 있다. 당분간 트럼프가 변할 가능성은 없겠지만, 아웃사이더 출신 영웅을 꿈꾼 그가 ‘일그러진 영웅’으로 전락할 조짐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면 과장일까. 그것도 예상보다 빨리.
박종현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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