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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분짜리 미국 단편 흑백영화 ‘런치 데이트’. 백인 부인이 기차를 놓치고 기차역 음식점에서 샐러드 한 접시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가 포크를 가지러 간 사이 남루한 차림의 흑인이 부인의 샐러드 앞에 앉아 음식을 먹고 있다. 부인은 화를 참고 흑인과 같이 먹는다. 다 먹은 흑인이 커피를 두 잔 가져와 하나를 부인에게 건넨다. 커피를 마신 부인은 기차를 타러 나갔다가 쇼핑백을 두고 온 것이 생각나 급히 음식점으로 뛰어오지만 흑인도 쇼핑백도 보이지 않는다. 당황한 부인이 음식점 안을 둘러보다 아까 그 옆 테이블에서 손도 대지 않은 샐러드 접시와 쇼핑백을 발견한다. 부인이 남의 자리에 앉아 흑인의 음식을 빼앗아 먹었던 것이다.

영화의 주인공은 음식에 커피까지 대접한 넉넉한 마음의 흑인이 아니라 남의 자리를 내 자리로 착각한 부인이다. 영화는 해피 엔딩으로 끝나지만 현실은 다르다. 자기 자리를 몰라보고 앉은 남의 자리는 자기 자리보다 클 가능성이 높다. 내 자리, 남의 자리를 분별할 줄 아는 안목이 욕심에 흐려졌기 때문이다. 번지수가 틀린 자리의 힘에 비례해 그 폐해도 커진다.

세계를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는 재미에 푹 빠진 것처럼 보이는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자신의 ‘반이민 행정명령’에 제동을 건 시애틀 연방지법 판사를 “‘소위(so-called)’ 판사라는 이가 끔찍한 결정을 내렸다”며 사법부 비하 발언을 쏟아냈다가 몰매를 맞고 있다. 공화당 벤 새스 상원의원은 “우리에겐 ‘소위 판사’는 없고 ‘진짜 판사’만 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트럼프가 앉은 자리가 ‘소위 미국 대통령’이니 그의 눈에 ‘소위 판사’만 보이고 ‘진짜 판사’는 보이지 않을 수 있다.

대한민국에도 남의 자리를 자기 자리로 안 ‘소위 대통령’ ‘소위 대통령 비서실장’ ‘소위 장· 차관’ ‘소위 교수’ ‘소위 정치인’이 수두룩하다. 그 가운데서도 ‘소위 비선실세’가 압권이다. 차은택씨가 그 비선실세를 가리켜 “이 바닥에서 정치만 평생 한 사람”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비선실세가 평생 했다는 정치는 어떤 정치였을까.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는 가혹한 정치였나. 그렇다면 그도 ‘소위 정치인’이 맞다.

김기홍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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