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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의문학기행] 지금이 ‘바닥’이라 느껴질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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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2-10 01:13:55 수정 : 2017-04-11 11:5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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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박할수록 예술의 창조적 상상력 커져 / 작은 여유만 있으면 바닥이 바로 도약대
최근 몇 년 사이 ‘피로사회’, ‘번아웃(burnout) 증후군’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현대인이 직장이나 조직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점점 심해지고 있다. ‘번아웃’이라는 단어 뜻 그대로 자신의 모든 것이 다 타버린 듯한 느낌, 육체적·정신적 에너지가 남김없이 소진돼 버린 느낌이 이 증상의 특징이다. 더 이상 설렘도, 기대도, 희망도 사라져 버린 듯한 절망감이야말로 번아웃의 가장 무서운 결과다. 사람들은 ‘스트레스가 바닥을 쳤다’는 말을 자주 하게 됐고, ‘컨디션이 바닥이다’라는 말도 일상화됐다. 과연 이렇게 몸도 마음도 바닥을 치는 시대에,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견뎌야 할까.

예술에서는 아이러니컬하게도 바로 이런 ‘바닥’에서 더욱 눈부신 창조적 상상력이 발현되곤 한다. 시인 힐데 도민은 무려 22년이 넘게 나치의 탄압을 피해 망명생활을 했다. 그녀는 언어도 문화도 낯선 땅 이탈리아, 영국, 도미니카공화국에서 매번 새롭게 모든 것을 시작해야 했다. 망명 초기엔 작가인 남편을 도와 번역일을 하며 생계를 꾸렸던 그녀가 망명생활 뒤에는 스스로 훌륭한 시인이 됐다. 그녀는 파란만장한 망명생활을 다음과 같은 멋진 문장으로 정리했다. “내 발을 허공에 딛었더니. 공기가 나를 받쳐주네.” 아무것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허공에 발을 디뎌야만, 우리는 허공조차 우리를 받쳐주고 있었음을 알게 되지 않을까. 그녀는 낯선 땅에서 무려 22년이 넘게 망명생활을 했지만, 이토록 희망적인 메시지로 감동을 준다. 어딜 가든 맨주먹으로 시작해야 했고, 아무것도 그녀를 보호해주지 않았지만, 그녀는 그 극한의 상황에서도 ‘공기가 나를 받쳐준다’고 표현한다.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는 자유란 이런 것이 아닐까. 무엇이든 마음대로 이뤄지는 것이 진짜 자유가 아니라, 최악의 상황에서도 ‘공기만은 나를 받쳐주고 있다’고 느끼는 것, 그리하여 ‘나는 충분히 괜찮다’고 여기는 것.

정여울 작가
양애경의 시 ‘바닥이 나를 받아준다’는 바닥을 치는 삶을 오히려 바닥이 나를 보듬어주는 삶으로 역전시키고 있다. “날마다 한 치씩 가라앉는 때/주변의 모두가 의자째 나를 타고 앉으려고 한다고/나 외의 모든 사람에겐/웃을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될 때.” 바로 그렇게 여기가 세상의 끝처럼 느껴질 때 문득 ‘바닥’이 나를 받아준다. “나는 내 방에 돌아와/바닥에 몸을 던지네/모든 짐을 풀고/모든 옷의 단추와 걸쇠들을 끄르고/한쪽 볼부터 발끝까지/캄캄한 속에서 천천히/바닥에 들러붙네.” 그렇게 바닥에 온몸을 붙이고 누우면, 그토록 슬프고 힘겨웠던 하루가, 온몸을 불살라 간신히 버텨낸 하루가 문득 괜찮아지기 시작한다. “몸의 둥근 선이 허락하는 한도까지/온몸을 써서 나는 바닥을 잡네/바닥에 매달리네/땅이 나를 받아 주네/내일 아침/다시 일어날 수 있을 거라고/그녀가 나를 지그시 잡아주네.” 바닥은 마치 어머니의 자궁처럼 나를 받쳐주는 따사로운 ‘그녀’다. 나는 여기가 인생의 바닥인가 싶을 때마다 이 시를 소리 내어 읊으며 위로받는다. 우리가 이 ‘바닥’을 그저 최악의 상황이 아닌 ‘나를 받쳐주는 절실한 마음의 토양’으로 바라볼 수 있는, 아주 작은 마음의 여유만 있다면. 도민의 첫 시집 제목처럼, ‘장미 한 송이를 받침대 삼아’서라도 우리가 부디 이 바닥 같은 절망을 이겨낼 수 있기를.

정여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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