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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돌아가신 장인은 생전에 라디오를 끼고 사셨다. 농사꾼이었던 장인에게 라디오는 들일의 고단함을 달래는 친구였다. 경운기에 올려놓은 라디오 노랫가락에 흥을 맞추던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장인이 좋아하던 프로는 MBC ‘싱글벙글쇼’였다. 시사문제를 재밌게 패러디한 콩트로 인기가 많다. 국내 최장수 프로그램으로 인기를 누리던 ‘싱글벙글쇼’가 올해 30주년을 맞았다. 22년간 방송된 김기덕의 ‘두 시의 데이트’가 가진 2위 기록과도 격차가 크다. 1987년부터 강석·김혜영 두 진행자가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진행한 덕분이라고 한다.

요즘 TV에 밀려 설 자리를 잃었던 라디오가 약진하고 있다. MBC ‘싱글벙글쇼’를 비롯해 ‘지금은 라디오시대’, KBS ‘황정민의 FM대행진’, SBS ‘컬투쇼’ 등 간판 프로그램들은 전 연령대에서 청취율이 오르고 있다. 수년 전부터는 20대 청취자가 음악프로 위주로 라디오에 편입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스마트폰이 보편화하면서 언제 어디서나 라디오를 손쉽게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스타들이 게스트로 출연해 얼굴을 보면서 들을 수 있는 ‘보이는 라디오’가 생겨난 후 라디오 애호가들이 부쩍 늘고 있다는 소리도 들린다. 이들은 아날로그적 감성 취향의 10, 20대라고 한다. 이들 덕인지 한국방송광고공사의 지난해 ‘라디오 시장 진단 보고서’에 따르면 라디오 매체 이용률은 2014년 30%에서 33%로 늘었다.

중장년층에게 라디오는 추억을 소환하는 도구다. 기자는 1970년대 후반 동무들과 구슬치기하다 해 질 녘이면 태권동자 모험담 만화 ‘마루치 아라치’를 듣기 위해 집으로 달려가곤 한 기억이 생생하다. 더 어릴 적에 이불 속에서 듣던 ‘전설 따라 삼천리’ 첫 구절은 지금도 외우고 있다.

한 대중문화평론가는 라디오의 선전에 대해 “외로움이 많은 현대인에게 자신에게만 속삭이는 듯한 배려와 듣기만 하면 되는 편안한 매체로 새롭게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1980년 영국 그룹 버글스는 “비디오가 라디오 스타를 죽였다”고 노래했다. 올드 미디어로 치부됐던 라디오의 약진이 반갑다. 추억 때문만은 아닐 게다.

박태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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