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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울산엔 호랑이 출몰하고, 풍랑에 고래 떠내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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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2-19 03:00:00 수정 : 2017-02-18 15:3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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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울산에는 호랑이가 출몰하고, 큰 풍랑이 불때면 연안에 고래가 떠내려오는 일이 잦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1930년대 울산의 모습을 담은 학술자료집 ‘울산군향토지’에 나오는 내용이다. 울산대곡박물관은 최근 일제강점기 작성된 이 자료집의 번역본을 발간했다. 번역에는 한삼건 울산대 교수가 참여했다.

‘울산군향토지’의 원본은 당시 경상남도의 지시로 농촌 교육향상과 쇄신을 통해 농촌을 개발하자는 목적으로 편찬됐다. 울산은 언양군과 울산군이 통합(1914년)한 하나의 울산군으로 존재하던 때였다. 울산군 내 5개 소학교와 18개 보통학교에 근무했던 일본인 교사들이 읍면단위로 조사했다. 이 내용을 울산군 교육회가 위원으로 위촉한 교장 25명이 연구해 발간했다. 192쪽 분량의 등사판본으로, 울산군 학무담당과 일본인 학교장 5명 등 모두 6명이 편집을 맡았다. 

‘울산군향토지’ 번역본. 울산시 제공
이 책은 당시 울산의 지도, 역사개관, 읍·면 연혁, 지세, 기후, 천연자원 분포, 행정, 인구, 교육·문화, 산업·경제, 교통 등은 물론, 풍속과 풍습, 구비전설, 주민 성향, 인물, 명승·사적 등까지 두루 담고 있다. 책 본문에는 1929~1931년 울산지역 호수통계와, 보통·소학교, 읍면별 생산·소비액, 직업, 토지소유관계, 생산품, 노동력, 도로, 자동차·자전거 수 등을 한눈에 알 수 있는 통계자료표도 90여개 실려 있다. 일제강점기 울산사회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향토지가 편찬될 당시 울산군의 인구는 14만4140명(한국인 14만709명, 일본인 3401명, 외국인 30명)으로 기록돼 있다.

이 책에서는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호랑이가 당시에는 울산 전역에서 출몰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호랑이는 지금의 울산 북구 강동부터 울주군 범서, 웅촌, 두동, 두서, 언양, 상북, 삼남 등 8곳에서 출몰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울산의 정체성과 같은 학은 청량과 범서에 서식했다. 큰 풍량이 불 때마다 울산 연안에 고래가 자주 떠내려와 포경업의 근거지가 됐다는 기록도 있다. 당시 제주 해녀들이 울산을 왕래한 인구 이동상태도 향토지에 담겨 있다.

이외에도 현대의 민속조사처럼 울산의 관혼상제와 세시·절기별 연중행사와 속담·민요·사투리도 수록돼 있다. 1년 중 상·하반기에 한번씩 어울림 대동의 장을 열었다는 것이나 정월대보름 이후 달 밝은 밤에 큰줄다리기(마두희)를 즐겼다는 내용도 담겼다. 입춘첩으로 사용된 문구 32가지와 당시 울산 사람들의 장·단점까지 실었다.

대곡박물관은 번역본을 발간하면서 책 내용의 각주 설명, 부록으로 근대 울산지역 사진엽서, 근대 울산 지도편을 수록해 독자들의 이해를 쉽게 했다.

신형석 대곡박물관장은 18일 “울산광역시 승격 20주년을 맞아 지역사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 번역본을 냈다”며 “일제강점기 울산 사회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울산=이보람 기자 bora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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