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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들어 위를 쳐다보라. 무엇이 보이는가? 형광등? LED? 그냥 어두컴컴한 천장? 다행히 하늘? 도시의 빌딩들이 조각낸 뿌연 그곳?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安藤忠雄·76)가 세토 내해에 버려지다시피 한 섬 나오시마 땅속에 설계한 미술관은 빛을 희롱하는, 경배하는 공간이었다. 최대한 자연공간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언덕 아래 땅속에 시멘트로 지었는데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빛의 구멍들 몇 개가 사각과 원형으로 뚫려 있을 따름이다.

나오시마의 겨울 햇빛은 환했다. 햇볕은 여름처럼 뜨거웠다. 지하로 들어가 각진 복도를 따라 걷다 무심코 내려다본 아래의 한 귀퉁이에는 하얀 빛이 머물고 있었다. 빛의 정거장이었다. 빛을 기다리는 간이역 대합실 같기도 했다. 손수건만한 빛 속으로 관람객 하나가 걸어 들어가 하늘을 보았다. 다른 이들이 떼를 지어 따라 들어가 빛의 정거장은 금세 가득 찼다. 1와트의 전기도 투여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조명으로 이처럼 환상적인 풍경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햇빛이야말로 우울을 치유하는 명약이다. 현대인들은 대부분 실내에 갇혀 산다. 창백한 형광등 불빛, 하얀 LED, 은은한 간접조명은 그나마 호사다. 빛을 제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면 마음속조차 어두운 실내일 수밖에 없다. 소설가 윤대녕은 ‘빛의 걸음걸이’라는 제목으로 소설을 쓴 적도 있다. 빛이 어떻게 당신에게 걸어오는지 찬찬히 살펴보시라. 그 걸음걸이를 보기 위해서는 지금 밖으로 나가 한적하고 고요한 공간을 찾아야 할 것이다. 안도 다다오는 오사카 근교에 설계한 ‘빛의 교회’에서 신의 십자가를 제시했다.

자연광이 비치도록 정교하게 설계한 그 교회에서는 시간대에 따라 십자가 모양이 달라지고 예배를 보는 좌석에 비치는 조명도 시시각각 변한다. 흐리면 흐린 대로, 밝은 날이면 또 그런 대로, 눈비가 내리면 그 그림자대로 십자가는 하늘에서 내리는 빛의 형상으로 나타난다. 십자가 틈새로 나무와 새와 집과 사람이 얼비친다. 신 혹은 우주가 지휘하는 빛의 교향악을 제대로 체험하지 못한 채 인공조명 아래 액정 화면 속 활자와 사진과 그림에 시선을 묻고 사는 현대인들의 현실을 역설적으로 조명하는 공간인 셈이다. 지금 가슴속에 빛이 비껴들 작은 창문 하나 내는 건 어떠하신지. 창문을 낸 당신들끼리 빛의 대합실에서 두런두런 젖은 영혼을 말리는 건 어떠하신지. 억겁의 세월 속 잠시 머물다 가는 지금 여기 빛의 대합실에서.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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