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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찬의 軍] '은밀하게 끈질기게'…ICBM 향한 北의 20년 집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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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2-18 11:01:58 수정 : 2017-02-18 11:0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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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10월 러시아 모스크바 세레메티예보-2 국제공항. 수도의 관문답게 사람들로 붐비는 공항 한켠에서 비행기를 타고 러시아를 떠나기 위해 32명의 러시아인들이 출국장에 들어섰다. 이들의 신원을 확인한 공항 경찰들은 이들의 앞을 가로막고 출국을 저지했다.

북한이 13일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을 통해 공개한 중장거리 탄도미사일 '북극성 2형'의 발사 장면.  북한 관영매체들은 이날 "지상대지상 중장거리 전략탄도탄 북극성 2형 시험발사가 2017년 2월 12일 성공적으로 진행됐다"고 보도했다. 노동신문
이들 대부분은 러시아 마케예프 로켓 설계국(MRDB) 소속 엔지니어로 최종 목적지는 북한 평양이었다. 마케예프 로켓 설계국은 스커드 탄도미사일을 개발한 곳으로 러시아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제작을 맡고 있었다. 같은달 핵물리학자 10명의 북한 입국을 적발한 러시아 경찰 당국은 이들의 출국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며 비행기 탑승을 저지했다. 한 달 후인 같은해 11월 22명의 미사일 기술자들이 북한으로 가려다 경찰에 또다시 저지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후 러시아 정부는 북한에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등 외교마찰로 번졌으나 이같은 사실은 소련 붕괴에 따른 혼란 속에서 조용히 묻혀버렸다.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2017년, 북한은 동해상에서 SLBM을 발사하고 이를 지상형으로 개조한 북극성-2형을 시험발사했다. 지난해 장거리 미사일 광명성호를 쏘아올리고 스커드-ER, 무수단 등을 잇따라 발사하며 탄도미사일 전력을 과시한 북한은 궁극적인 목표인 ‘미국 본토 타격’에 필요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확보에 한 발 다가선 모습이다.

◆ 북한 미사일에 숨어있던 러시아 커넥션

진화타겁(鎭火打劫). 남의 집에 불난 틈을 타 도둑질을 한다는 사자성어의 의미를 1980년대 말~1990년대 초의 북한만큼 철저히 관철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소련이 고르바초프의 개혁개방 정책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여파로 비틀거리던 이 때, 북한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2~3년 정도였던 짧은 시기를 잘 활용했던 북한의 선택은 20년 후 그 성과를 서서히 드러낸다.

12일 시험발사를 위해 이동하는 북극성 2형 미사일 발사차량. 북한의 주력전차 중 하나인 선군호를 기반으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중앙TV
1988년 소련은 액체연료 엔진 SLBM 프로젝트를 중단하고 고체 엔진으로 전환한다. 수십년 동안 액체엔진을 개발해오던 마케예프 설계국 엔지니어들은 일거리가 없어졌고,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고자 했다. 탄도미사일 개발을 추진하던 북한 입장에서는 단기간에 획기적인 기술 향상을 꾀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소련 붕괴 직전인 1991년 4월 러시아의 고체물리학자 아나톨리 루브초프는 북한에 로켓 산업 기반을 조성하기 위해 200명의 러시아 과학자를 북한에 보낼 계획을 세웠다. 루브초프가 모집했던 사람들 중에는 무수단 중거리 탄도미사일의 원형인 R-27 SLBM 설계자인 유리 베사라모프도 포함되어 있었다. 베사라모프는 북한에서 영구적인 수준의 일자리를 보장받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러시아 정부가 과학자들의 출국을 저지하면서 이들의 방북은 이루어지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거물급 과학자들의 방북이 실패하자 북한은 1993년 러시아의 미사일, 핵무기 전문가를 고용하는 행위를 중단하겠다고 러시아 정부에 약속했다. 하지만 북한은 이미 적지 않은 성과를 얻었다. 마케예프 설계국 고위급 인사들이 1992년 북한 입국을 시도하기 전 실무자급에서는 미사일 설계도 등 기술교환이 충분히 이루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소련 붕괴 직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산재한 ICBM 제조공장들 중 상당수가 관리되지 않은 채 방치되면서 북한은 이곳의 기술자료들을 대거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1993년에는 SLBM 발사장치가 장착된 러시아의 골프-2 잠수함을 고철로 구입해 미사일 발사시스템을 확보했다.

러시아 기술이 유입되면서 1990년대 이후 북한 탄도미사일 개발은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지난해 4월 북한이 발사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북극성. 북극성 2형은 기본적으로 북극성과 매우 유사하다. 노동신문
1993년 처음 시험발사된 노동 미사일(사거리 1300㎞)은 개발 시점부터 시제품 등장까지 2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당초 스커드 엔진 4기를 묶었을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대출력 엔진 1기를 장착한 노동미사일의 엔진은 스커드-B 미사일 엔진을 1.5배 늘려 제작됐다. 로켓 엔진 기술이 초보단계였던 당시 북한으로는 이같은 개조는 불가능했다. 스커드 엔진 개조 경험이 풍부한 러시아 기술자들의 직접적인 개입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ICBM인 KN-14가 원형인 3단 로켓 KN-08에 비해 2단으로 바뀌고 탄두부 모양이 변한 것도, 지난해 8월 동해 신포 앞바다에서 발사돼 500㎞를 날아간 북극성 SLBM에도 러시아 SLBM 기술이 적용된 것이라는 평가다.

◆ 북한 로켓엔진 기술의 이단아, 고체 엔진

문제는 북한의 SLBM 북극성과 지상발사 중장거리미사일 북극성-2형이다. 지난해 8월 발사된 북극성과 지난 12일 평북 방현 일대에서 시험발사된 북극성-2형은 고체연료를 사용한다. 북한의 로켓 엔진 라인업을 구성하는 스커드와 무수단 계열은 모두 액체연료를 쓴다. 단거리 미사일인 KN-02나 우주발사체인 은하-3호의 3단 추진체 등에서 고체연료를 사용하지만 최대 2000㎞ 이상 날아갈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SLBM에 고체연료를 탑재하는 것은 다른 차원이다.

북한의 고체연료 엔진이 처음 공개된 것은 지난해 3월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에 고체연료 엔진이 지상에 수평으로 놓인 채 실시된 연소시험이다. 연소시험 5개월 후 북극성 SLBM은 500㎞를 날았고, 그로부터 6개월만에 지상에서 SLBM과 매우 유사한 방식으로 북극성-2형이 발사돼 500여㎞를 비행했다. 일반적으로 로켓 엔진이 개발에 착수해 기술 검증을 마치고 발사체에 탑재되기까지는 20여년이 걸린다. 그런데 북한은 고체엔진을 공개한지 약 1년만에 수백㎞를 날리는 대박을 쳤다. 외부의 직접적인 기술지원 없이는 불가능하지만 언제 어떤 경로로 지원이 이루어졌는지 알려진 것은 없다. 중국, 이란의 지원이 있었을 것이란 관측이 제기되지만 추측 수준이다. 

고체연료를 사용하면 탄도미사일 발사 준비 시간이 대폭 단축된다. 발사준비 시간을 고려해 미사일 발사 전 탐지해 파괴하는 ‘킬 체인’이 무력화될 위험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미국의 미사일 전문가 존 실링은 14일 38노스 기고문에서 “노동미사일은 연료 사전주입 등에 30~60분이 걸리지만 고체연료를 쓰는 북극성-2형은 발사준비에 5분밖에 걸리지 않아 선제공격을 통해 파괴하기가 더 어려워졌다”고 분석했다. 킬 체인이 무력화되면 대한민국으로 날아올 북한 탄도미사일 수도 늘어난다. 한국형미사일방어체계(KAMD)로 저지할 수 있는 미사일 숫자가 제한되는 상황에서 인적, 물적 피해도 증가한다.

고체연료 엔진이 기술적 신뢰성을 갖추면 북한의 ICBM 개발도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발사준비에 최대 수시간이 걸리는 액체 연료 엔진 대신 고체 연료 엔진을 탑재하면 이동식발사대(TEL)를 통해 기습적인 발사가 가능하다. 미국의 탄도미사일 조기경보위성(DSP)과 해양감시위성 등이 북한 전역을 감시하고 있지만 발사 준비시간이 극히 짧은 고체 연료 엔진 ICBM 탐지는 쉬운 일이 아니다.

북한이 기존에 보유하고 있는 KN-08과 KN-14 ICBM 경계도 소홀히 할 수 없다. 중국은 실전배치된 지 수십년이 지난 둥펑(DF)-5호를 개량하면서 운용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이 ICBM 발사체의 고체연료화를 달성한 반면 중국은 아직 초기 단계다. 따라서 고체 연료 기술이 축적되는 동안 액체 연료 엔진 ICBM도 기술개량을 통해 준비시간을 줄이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북한도 고체연료 엔진 기술이 안정적인 수준에 이를 때까지 KN-08과 KN-14의 성능을 개량하는 투 트랙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보인다.

12일 시험발사가 성공한 직후 기술자들이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을 에워싸고 만세를 부르고 있다. 노동신문
가장 큰 문제는 앞으로 북한이 꺼낼 새로운 카드가 무엇인가라는 점이다. 북한이 그동안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다고 위협했지만 우리는 “기술 수준이 낮다”며 북한의 주장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가 본 북한의 기술 수준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북한은 20여년 전부터 기술 확보를 시도해왔고, 김정은 체제 출범 직후 핵보유국 지위 확보를 위해 그 성과물들을 하나씩 공개했다

고체 연료 엔진 시험까지 성공한 북한에 대해 남은 우려는 단 하나, 이것이 끝일까 하는 것이다. 북한이 숨겨놓은 카드가 있는지 여부조차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우리가 모르는 무엇인가가 또다시 등장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다음달로 예정된 한미 연합 키 리졸브 훈련을 전후로 북한이 새로운 카드를 공개한다면 그 충격파는 무수단보다 더 크고 깊을 것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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