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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찬의 軍]“보잉 vs KAI”…17조원 美 훈련기 사업 최종 승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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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2-19 08:00:00 수정 : 2017-02-20 07: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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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방위산업체들이 참여하는 무기 도입 사업 중 최대 규모로 꼽히는 미국 차기 고등훈련기(APT : Advanced Pilot Training) 사업 경쟁이 2파전으로 압축됐다.

17일 방위산업계에 따르면 미국 방산업체 노스롭 그루먼은 최근 APT 입찰을 포기했다. 이탈리아 업체 레오나르도와 손을 잡고 M346의 개량형인 T-100을 내세웠던 미국 업체 레이시온도 불참을 선언했다. 다음달 말까지 제안서를 제출해야 하는 상황에서 미국 내 파트너를 잃어버린 레오나르도는 다른 사업자를 찾기 어려워지면서 자사의 미국 지사격인 레오나르도 DRS를 앞세워 사업에 참여할 뜻을 밝혔다. 하지만 미국 업체의 참여가 필수적인 APT 사업의 특성상 미국 록히드마틴 한국항공우주산업(KAI)과 미국 보잉 스웨덴 사브 컨소시엄 간 맞대결로 치러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APT 사업은 미 공군에서 향후 수십년간 사용할 훈련기 350여대(약 17조원 규모)를 새로 도입하는 사업이다. 공군 외에 미 해군, 해병대 훈련기와 가상 적기까지 합치면 1000여대 수준으로 훌쩍 뛴다. 이 정도 규모의 대형 사업은 향후 수십년 동안 새롭게 진행되기 어려운 기회로 전 세계 항공기 제작업체들이 눈독을 들여왔으나 최종적으로는 2개 컨소시엄으로 압축됐다.

◆ 표면적으로는 T-50A 유리하다는 전망 나와

지상활주로에 주기되어 있는 T-50A. 록히드마틴 제공
KAI는 록히드마틴과 손잡고 국산 T-50 고등훈련기를 개조한 T-50A를 제시하고 있다. 조종석에 미 공군이 요구하는 대화면 시현기(LAD)와 공중급유장치 등을 갖추고 가상훈련(ET) 기능을 통해 훈련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KAI와 록히드마틴은 지난해 11월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그린빌에서 T-50A 시제기 시험비행을 실시하는 등 발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현재까지는 T-50A가 유리한 것처럼 보인다. 올해 말 최종 사업자 결정을 앞두고 T-50A는 미국 현지 시험 비행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보잉은 사브와 컨소시엄을 통해 새로 개발한 훈련기를 지난해 말 공개하고 각종 시험을 진행중이다.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공업지대인 그린빌에 T-50A 최종조립공장을 설치하기로 한 것도 수주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사우스캐롤라이나는 전통적으로 공화당을 지지했고 이번 대선에서도 많은 백인 노동계층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표를 던진 곳이다.

 
보잉의 신형 훈련기는 저가를 앞세워 APT 사업을 공략할 것으로 보인다. 보잉 제공
KAI는 APT 사업에 사활을 걸고 있지만 전면에 나서지 않고 몸을 낮추는 분위기다. 미국 우선주의를 강조하는 트럼프 행정부를 의식한 행보다. 미국 내 일자리 창출을 위해 글로벌 기업들을 상대로 전방위 압박을 가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눈에 어긋나는 일을 피하려면 ‘T-50A=Made In USA’라는 프레임을 만들어야 한다. 이라크, 필리핀, 태국 등에 T-50이 수출되면서 형성된 ‘한국 훈련기’라는 이미지를 덮어야 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APT 사업에서는 록히드마틴이 주도권을 갖는 모양새다.

한국 공군도 APT 사업에서 KAI를 측면 지원하고 있다.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는 3월 21일부터 닷새간 말레이시아 에어쇼에 참가한다. 올해 아시아 지역 에어쇼 가운데 최대 규모로 열리는 '말레이시아 에어쇼'에는 미국, 러시아, 프랑스 등 10여개국이 참여할 예정이다. 조종사 10명을 포함한 지원 요원 등 70여 명과 T-50B 9대와 C-130 수송기 4대가 투입된다. T-50B는 T-50 훈련기를 특수비행용으로 개조한 항공기다. 군 관계자는 “미국 에어쇼에 참가하면 APT 관련 홍보효과가 더 크겠지만, 미국에는 국가를 대표하는 에어쇼가 없어 비용 문제를 고려해 말레이시아 에어쇼에 참가하기로 했다”며 “말레이시아 에어쇼에도 미국 정부와 군 관계자들도 많이 참석하는 만큼 긍정적인 홍보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T-50A 수주 낙관하기는 일러…비용이 관건

미 사우스캐롤라이나주 그린빌 상공을 시험비행하는 T-50A. 록히드마틴 제공
얼핏 보면 T-50A가 APT 사업에서 승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하나하나 뜯어보면 보잉 사브 컨소시엄과 비교할 때 뚜렷한 경쟁우위를 찾기는 힘들다는 지적이다.

T-50은 1990년대 중반 개발이 시작된 기체로 기술적 신뢰성은 확보되어 있다. 개량이 진행됐지만 기체에 적용된 기술은 20년 전의 것이다. 보잉 사브 컨소시엄이 최신 기술을 적용해 훈련기를 개발하고 감항인증을 받으면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을 가능성도 있다. T-50A 생산공장이 들어설 사우스캐롤라이나주는 보잉도 찰스턴에 B787 드림라이너 생산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백인 노동계층의 고용효과에 대한 보잉과 록히드마틴의 차이는 거의 없는 셈이다. 

보잉의 신형 훈련기도 시험비행을 실시하며 기술검증에 한창이다. 보잉 제공
결국 수주 여부를 결정하는 가장 큰 요소는 가격 경쟁이다. 합동전투기(JSF), 차기 폭격기 사업에서 각각 록히드마틴과 노스롭 그루먼에 패한 보잉은 항공방위사업 분야에서 침체기를 걷고 있다. F-15 전투기 생산은 예전에 끝났고 F/A-18도 새로운 판로를 찾지 못하면서 사실상 생산 종료 수순을 밟고 있다. V-22 오스프리나 CH-47F 치누크 헬기 등이 있지만 판세를 뒤집기는 역부족이다. 따라서 보잉이 APT 사업에서 파격적인 저가 입찰을 감행해 항공방위사업에서 입지회복을 노릴 가능성이 높다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보잉이 공격적인 전략을 구사하면 APT 사업은 가격경쟁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항공기 제작 경험이 부족하거나 인건비, 생산설비비 등 고정비가 높은 업체는 감당하기 어렵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참여의사를 밝혔던 미국 업체들이 발을 빼기 시작한 것도 비용 계산의 결과다.

노스롭 그루먼은 훈련기 시제품까지 만들었지만 미 공군 차기 폭격기 개발 사업을 수주해 여유가 있는만큼 ‘제살 깎아먹기’에 나설 이유가 없었다. 레오나르도의 첫 파트너였던 제너럴 다이나믹스(GD)는 항공기 분야 경험이 거의 없다. 두 번째 파트너였던 레이시온은 항공무장과 전자장비를 제작할 뿐 항공기 생산 기반은 전무하다. 레이시온은 비용절감이라는 이유로 레오나르도에 추가 투자에 따른 리스크를 떠넘기려고 했지만 이탈리아 근로자의 높은 인건비로 비용절감에 한계가 있는 레오나르도는 이를 받아들이기 어려웠다는 분석이다. 미국의 군사전문매체 디펜스뉴스는 최근 “레오나르도가 APT 사업을 수주하려면 대당 2500만달러(287억원)인 가격을 1500만~1800만달러(172억~206억원)로 낮춰야했으나 인건비 등을 고려할 때 불가능했다”고 분석했다.

T-50A는 검증된 기술과 초음속 성능으로 APT 사업에서 우위를 점할 것으로 전망된다. 록히드마틴 제공
해외 항공우주전문가들은 T-50의 대당 가격(기체+엔진 기준)을 2500만 달러로 보고 있다. 이 가격은 레오나르도의 M346과 같은 수준이다. 즉, 레오나르도가 겪은 가격 인하 압박은 KAI에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뜻이다. 미 공군의 최신 기술 반영요구를 적용하면서 가격을 내리는 것은 말 그대로 뼈를 깎는 수준의 강도높은 비용 절감이 수반되어야 가능하다. 하지만 T-50A도 가격경쟁에서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반론도 있다. 기존 T-50을 개조한 T-50A는 보잉과 달리 개발비 부담이 없다. 한국과 인도네시아, 이라크, 필리핀 등에서 쓰이고 있어 규모의 경제에 따른 비용 절감 효과도 누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후속군수지원 비용도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 최근 군에서 운용되는 항공기는 전자제품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을 만큼 전자장비 비중이 높다. 이는 성능 향상에 도움이 되지만 후속군수지원 비용 상승 등의 문제를 일으킨다. 최근 외신 보도에 따르면, 미국 해병대의 주력전투기인 F/A-18 호넷 가운데 74%가 수리 등의 이유로 지상 대기 상태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존 데이비스 미 해병대 부사령관은 하원 군사위 청문회에서 “F/A-18 280대 가운데 지금 당장 이륙이 가능한 것은 25%인 72대에 불과한 실정”이라며 “나머지 208대 중 109대는 장기 수리, 99대는 부분 수리를 각각 받고 있다”고 밝혔다. 해군 소속 F/A-18 전투기의 62%도 수리 등을 이유로 지상에 대기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예산통제법에 따른 자동 삭감(시퀘스터)에 따라 미군 예산사정이 좋지 못한 상황에서 발생한 정비 문제는 APT 사업에서 후속군수지원 비용 절감이 화두로 떠오를 것을 시사하고 있다.

APT 사업은 세계 훈련기 시장의 판도를 뒤바꿀 중대한 사업으로 평가된다. JSF 사업에서 록히드마틴이 승리하면서 세계 전투기 시장에서 록히드마틴의 우세가 확립된 만큼 APT 사업의 승자가 세계 훈련기 시장을 차지할 확률이 높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한 유럽 국가의 공군은 미 공군의 선택을 추종할 가능성이 높으며, 유럽과 가까운 아시아 국가들도 유럽의 선택을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APT 사업을 놓고 보잉과 록히드마틴의 ‘단두대 매치’가 불가피한 이유다. 승자가 모든 것을 가져가는 물러설 수 없는 한판 승부에 참여한 KAI가 세계 시장에서 한 단계 도약하는 발판이 될 지 여부에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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