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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자와 만납시다] 좋은 옷 사려 1시간 전부터…없어서 못 사는 교복 중고장터

입력 : 2017-02-25 08:00:00 수정 : 2017-02-25 15: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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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지만 벗은 채 구석에 선 한 남학생은 어머니가 가져다준 옷을 수줍게 집어 들었다. 옆에는 방금 가져온 듯한 바지 2~3장이 쌓여있다.

#2. 매대 사이에 선 한 중년 남성이 스마트폰으로 바지와 셔츠 등을 촬영하고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는 같이 오지 못한 딸에게 사진을 보냈다고 했다.

#3. 손자로 보이는 남학생과 온 노파는 “교복 사이즈가 맞는 게 없네”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진열된 바지를 뒤적이는 할머니의 손에서 아쉬움이 묻어난다.



해마다 입학철을 앞두고 서울 양천구청에서는 교복장터가 열린다. 중고 교복을 싸게 살 수 있어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알뜰한 소비자들로 성황을 이룬다. 양천구녹색가게연합회 주관으로 24~25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양천구청 3층에서 진행되는 ‘교복·학생용품 교환장터(교복장터)’는 부모 등의 손에 이끌려온 교복 예비주인을 쉽게 만나볼 수 있는 행사이기도 하다.

교복장터 첫날인 24일 오전 10시30분쯤 행사장 문 앞에서 만난 양천구청 관계자는 “아침 일찍부터 많은 분이 오셨다”며 “심지어 행사 시작 1시간도 더 남았는데 오전 9시부터 기다리신 분도 계셨다”고 귀띔했다.

 

양천구녹색가게연합회 주관으로 24일 서울 양천구청 3층 양천홀에서 열린 ‘교복·학생용품 교환장터’는 옷을 고르는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양천구청 제공



◆ 두 손녀와 교복장터 수년째…“혜택 많이 봐, 옷이 더 많아졌으면”

두 손녀와 사는 이연순(65)씨는 고교 3학년인 큰 손녀가 중학생일 때부터 교복장터를 애용했다. 언니 뒤를 이어 둘째 손녀도 장터에서 구입한 교복을 입었다.

공공근로로 조손가정을 꾸리는 이씨는 구청 건물에 비치된 홍보물에서 교복장터 소식을 접했다고 했다.

이씨의 큰 손녀는 처음 장터 찾기를 싫어했다. 한창 민감할 사춘기에 다른 사람의 손때가 묻은 옷을 입어야 했으니 어찌보면 당연했다. 다행히 이제는 손녀도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거부감을 버리고 교복장터에서 옷을 사 입는 걸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단다.

보통의 가정도 버거운 교복 가격은 이씨에게는 더욱 큰 부담이었다. 올해 고교에 들어가는 둘째 손녀를 위해 재킷과 블라우스, 치마 등으로 구성된 기본 세트를 맞추는 데만 19만8000원이 들었다고 했다.

이씨는 신제품 가격이 5만5000원인 카디건을 구하러 장터를 방문했다. 교복용 카디건이 5만원이 넘는다니 상상이 가는가? 일반 쇼핑몰에서도 5만원이 넘는 카디건을 쉽게 보기 힘든 마당에 교복이 6만원에 육박한다니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너무한 일이다.

안타깝게도 이씨는 뜻을 이룰 수 없었다. 중고로  카디건을 내놓은 이가 없어서다. 그나마 구매한 블라우스마저 둘째 손녀가 다니는 학교의 교복은 아니었다. 웃옷으로 숨겨 색깔만 비슷하게 맞추면 된다는 손녀의 기특한 제안에 덥석 집어들었다고 한다. 제대로 건진 건 치마 1장이 전부였다. 그나마 치수가 커 줄여야 한다는 게 이씨의 하소연이다.

그럼에도 이씨는 그간 교복장터의 혜택을 많이 봤다고 고마워했다. 재킷은 비싸야 1만5000원이고, 셔츠는 2000~3000원이니 여러 장을 사도 큰돈이 들지 않아 경제적 부담이 훨씬 줄어서다. 이씨는 대화하는 내내 “혜택을 많이 봤다”며 연거푸 만족해했다.

이씨는 갈수록 중고 교복을 내놓는 이가 줄어드는 것 같아 아쉽다고 했다. 미리 하복도 구하려 했다던 그는 “새 옷을 사야 할지도 모르겠다”며 “장롱에 옷을 넣어두지 말고 함께 나눠 썼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양천구녹색가게연합회 주관으로 24일 서울 양천구청 3층 양천홀에서 열린 ‘교복·학생용품 교환장터’를 찾은 시민들이 길게 줄 서 있다. 양천구청 제공.



◆ 교복장터 봉사활동 3년 “학교는 알려주지 않아…장터 더 많이 생겼으면”

진명여고(양천구 목동로 소재) 3학년이 된 박현지(18)양은 올해로 교복장터 봉사활동 3년째를 맞았다. 고교 생활 내내 빠지지 않고 자원봉사를 자처한 박양은 “학교에서 교복장터 관련 내용을 직접 알려준 적이 없다”고 말했다. 교복을 저렴하게 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데도 교사 누구도 장터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현실에 안타까움이 드는 모양이다.

그나마 박양의 동생은 장터에서 교복을 구했는데, 입소문으로 전해들은 어머니 덕이었다고 한다. 직접 나서서 알아보지 않는 이상 교복장터의 존재조차 알 수 없어 아쉬움이 든다고 박양은 거듭 강조했다.

중고 참고서와 교복 코너를 돌아가며 봉사활동을 해온 박양은 “판매 수익은 장학금으로 전달하니 의미가 큰 것 같다”며 “앞으로도 이 같은 장터가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 “싸게 살 수 있어 만족해요”…“중고도 입으면 똑같은 교복이죠”

신목중(양천구 목동중앙로 소재)에 다니는 자녀를 둔 엄마 A씨는 “아이가 계속 성장하는데 옷이 한 벌로는 부족해 사러 나왔다”며 “바지와 재킷 두 벌씩 샀다”고 전했다.

A씨가 교복장터 존재를 접한 경로는 양천구 소식지였다. 그는 “매달 나오는 책자(소식지)가 있다”며 “장터가 열린다는 글을 보고 찾아왔다”고 덧붙였다.

봉영여중(양천구 목동동로 소재)에 다니는 손녀를 데려온 B씨는 한동안 찾는 사이즈가 안 보여 당황했다고 한다.

B씨는 “(손녀에게 줄) 94사이즈가 보이지 않는다”며 “다양한 학교의 교복이 한꺼번에 매물로 나온 탓에 원하는 옷을 찾는 일도 쉽지 않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내 “그래도 교복을 싸게 살 수 있어 만족한다”며 웃어보였다.

이날 장터 매물로 나온 교복의 대상 학교는 50여곳에 달했다.

나이답지 않게 '합리적인 소비'에 나선 예비 중학생도 만날 수 있다. 올해 양천중(양천구 지양로 소재)에 입학한다는 C군은 “친구와 함께 교복을 사러 왔다”고 당당히 밝혔다.

대물림하려고 패션까지 포기할 수는 없는 법. C군은 바지 길이를 중요히 여긴다고 강조했다. 같이 온 친구와 서로 옷이 맞는지 봐줬다던 C군은 “괜찮은 옷이 있으면 몇 장을 사려 한다”며 “중고이기는 해도 입으면 다 똑같은 옷”이라고 제법 의젓하게 말했다. 이어 진열된 교복을 보고는 대체로 만족했다고 덧붙였다.

양천구녹색가게연합회 주관으로 24일 서울 양천구청 3층 양천홀에서 열린 ‘교복·학생용품 교환장터’에서 시민들이 옷을 살펴보고 있다. 양천구청 제공.



◆ 첫날 총 2000점 중 1700점 판매…“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

양천구청에 따르면 이날 오후 4시30분 기준 교복과 참고서 등을 포함해 모두 2000점이 진열된 가운데 1700점이 팔려나갔다.

구청 관계자는 “교복을 싼 가격에 구할 수 있고, 자원 재활용 측면에서도 좋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며 “많은 분들의 관심과 참여를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지난 1999년 처음 문을 연 교복장터는 2014년 총 4700점(3300여점 접수+기존보유 1400여점) 중 2866점을 판매했으며, 그 수익으로 관내 저소득층 학생 20명에게 모두 700만원의 장학금이 지급됐다.

2015년에는 기존 재고 2200여점에 접수량(3000점)을 포함, 총 5200점을 내놓았다. 2823점을 팔아 777만6000원의 수익을 냈고, 역시 추천받은 저소득층 학생 20명에게 700만원이 돌아갔다.

지난해에는 학생과 학부모 등 200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총 5000점(교복 4500점+참고서 500점)의 물품이 접수됐으며, 이 중 2647점을 판매해 744만원의 수익금을 거뒀다. 마찬가지로 저소득층 학생 35명이 장학금 혜택을 누렸다.

김동환·안승진 기자 kimchar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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